하비에르 마리아스『새하얀 마음』
우리는 종종 내가 책을 고르고 읽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많은 순간, 책이 나를 먼저 고르고, 나는 그 부름에 응답하듯 읽게 된다. 독서는 종종 ‘선택’이 아니라 ‘인연’에 가깝다.
『새하얀 마음』 역시 누군가의 언급이 없었다면, 내가 스스로 집어 들 가능성이 거의 없는 책이었다. 작년에 나는 위화의 작품들을 거의 모두 구해 읽었다. 그중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에서, 위화는 이 소설의 묘사를 격찬했다.
『새하얀 마음』은 시작부터 강렬하다. ‘권총 자살’이나 ‘나체’ 같은 자극적인 단어 때문만은 아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딸이 손님들과 식사하던 중 화장실에 간다. 오 분쯤 지나 총성이 울리고, 딸은 화장실 바닥에 반라의 모습으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그때 아버지는 고기를 씹다 말고 삼키지도 못한 채 화장실로 달려간다. 그는 들고 있던 냅킨으로 딸의 몸을 가리지 않는다. 대신 비데 위에 떨어져 있던 딸의 브래지어를 집어 그녀의 몸 위에 덮는다.
그 속옷을 보는 게, 반쯤 나체로 쓰러져 있는 딸의 몸을 보는 것보다
더 부끄럽다고 여긴 것 같았다.
『새하얀 마음』이라는 제목은, 요즘 고함 (고전 함께 읽기) 6기에서 읽고 있는 『맥베스』에서 맥베스 부인이 말한 대사에서 왔다.
제 두 손은 당신과 같은 색깔이에요. 하지만 전 새하얀 마음을 가진 게 부끄러워요.
(My hands are of your colour; but I shame to wear a heart so white.)
권총으로 자살한 여자는 화자의 이모이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남자는 화자의 아버지다.
그리고 막 결혼한 화자에게, 아버지는 이런 조언을 남긴다.
혹시 비밀이 생기거나, 이미 비밀을 가지고 있다면, 절대 말하지 말거라.
이 소설은 ‘사건’보다 ‘알아버린 뒤의 마음’을 다룬다.
알기 전의 ‘새하얀 마음’은, 알고 난 뒤 어떻게 변하는가.
듣는 것은 가장 위험한 일이다.
그것은 곧 안다는 것이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듣는 순간, 새하얀 마음은 더럽혀질 수 있다.
우리는 듣게 될 말을 미리 예측할 수 없고, 한번 듣고 나면 언제나 늦어버린다.
듣는 순간, 이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듣는다 = 알게 된다 = 이해하게 된다 = 공범이 된다.
화자와 그의 아내가 ‘동시통역사’라는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그들은 직업적으로, 타인의 말과 타인의 진실, 타인의 비밀을 매일같이 자기 안으로 통과시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를 동시에 닮았다’고 불리는 작가, 하비에르 마리아스.
결혼과 친밀성에 대해 가장 불안한 방식으로 쓰인 소설, 『새하얀 마음』.
일단 읽기 시작하면, 읽기 전의 '새하얀 마음'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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