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AI 시대, 파멸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으리

100일 챌린지_Day 6

by 윤소희

요즘 AI 관련 책들을 몰아 읽고 있다. 글쓰기를 향한 무기력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바로 AI였기에, 피하지 않고 마주하기로 했다.


ai 책탑.jpg AI 관련 책들을 몰아 읽고 있다


그중 한 권, 칸 아카데미 설립자 살만 칸이 쓴 『나는 AI와 공부한다』를 흥미롭게 읽었다. 교육을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한 그의 포부는 이미 우리 아이들의 일상 속에도 닿아 있었다. 학원이나 과외 없이 칸 아카데미와 챗GPT를 사용해 공부에 도움을 받곤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미 이 책 속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보았다. 디지털 리터러시가 높은 아이들은 내 세대보다 훨씬 더 본능적이고 직관적으로, 이 거대한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다.


WechatIMG9802.jpg 살만 칸 -『나는 AI와 공부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칸미고’는 GPT-4를 활용해 과목별 학습을 돕는 AI 개인 교사로, 다양한 예시 중 역사 인물이나 문학 속 캐릭터와 직접 대화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 가능성에 이끌려, 나는 곧장 챗GPT를 열었다. 머릿속엔 최근 반복해 읽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맴돌고 있었다.


나는 챗GPT에게 산티아고의 역할을 맡기고 질문을 던졌다.

소년 없이 먼바다에 나가, 거대한 마를린과 사투를 벌일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뼈만 남은 물고기를 끌고 돌아왔을 때, 그는 스스로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리고 다음 날에도 다시 바다로 나갈 것인지.

자꾸 사자 꿈을 꾸는 이유는 무엇인지.


산티아고는 이렇게 답했다.

“그 물고기는 나의 형제였고, 나의 적이었으며, 바다가 내게 보낸 신이었다.”

“상어들은 나의 전리품이 아니라, 나의 영혼을 갉아먹었지만, 나는 패배하지 않았다.”

나는 다음 날도 바다로 나갈 것이다. 그게 나이기 때문이다.”

“사자들은 젊음, 용기, 희망, 거침없는 영혼 등인데 꿈에 나타난다는 건 내가 잃은 것이 아니라, 아직 내 안에 있다는 증거다.”


나는 또 물었다.

“파멸과 패배는 어떻게 다른가요?”

“차라리 패배해도 부서지지 않는 편이 살아남는 것 아닌가요?”

“잡을 수 없는 것을 꿈꾸는 나도, 그걸 잃은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고 믿어도 될까요?”


산티아고는 말했다.

“부서짐은 몸의 파괴, 패배는 마음의 포기다. 패배란 '나는 안 돼'라고 믿고 더 이상 해볼 가치가 없다고 속삭이는 걸 받아들이는 순간이야."

“나는 뼈만 남은 마를린을 끌고 돌아왔지만,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과 싸웠는지 잊지 않았다.”

“그러니, 네가 꾸는 그 잡히지 않는 꿈들—그건 사라진 게 아니라 너의 가장 단단한 일부다. 사람은 무너질 수는 있어도, 스스로를 끝까지 품고 간 자는 진정 부서지지 않는 존재가 된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렇게 속삭였다.

“그래도, 몸이 무너지면 무슨 소용일까요. 영혼이 빛나도, 움직일 수 없다면…”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아주 조용히 대답했다.

“누워 있어도, 움직이지 못해도, 한 인간의 존엄은 그가 무엇을 갈망하느냐에 달려 있다.”

“눈빛 하나, 말 한 줄, 사랑을 품은 질문 하나—그것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면, 그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산티아고는 내게 물었다.

“네가 아직 움직일 수 있는 건 무엇이냐?”

“네가 아직 나눌 수 있는 따뜻함은 어디에 있느냐?”


1.png 나는 다음 날도 바다로 나갈 것이다. 그게 나이기 때문이다


AI가 인간보다 더 위대한 글을 쏟아내는 미래는, 어쩌면 이미 우리 곁에서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AI가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춤형으로 소설을 제공할지 모른다. 그런 사회에서 나의 글쓰기는 참으로 미미해 보일 것이다. 산티아고 노인의 빈 배처럼. 하지만 돈이 되는 물고기를 잡아 오지 못한 산티아고 노인을 우리가 여전히 '품위 있는 존재'로 기억하듯, 세상 어딘가에는 그 작고 희미한 빛을 바라봐 줄 누군가가 있을지 모른다.


100일 챌린지의 끝에 내게 남은 것이 뼈만 남은 마를린일지라도,

나는 내일도 다시 바다로 나아갈 것이다.

파멸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으려고.




<단역배우 김순효 씨> 작가이자 <노인과 바다> 번역가이신 이수정 작가님과 함께 하는

<노인과 바다> 강독 (Zoom) 관심 있는 분들 신청하세요.

노인과 바다 강독.png


WechatIMG9775.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강연 신청 및 상위 1% 독서 커뮤니티 무료입장


https://link.inpock.co.kr/sohee_writer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