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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중한 두 겹의 문은 사실 잠겨있지 않았다

100일 챌린지_Day 4

by 윤소희

옆에 앉아 웃고 있던 친구가 느닷없이 말했다.

“일당 줘.”

당황했다. 나는 돈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친구는 운전석 옆자리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을 뿐인데.


그 순간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무거운 트럭을 운전하고 있는 걸까. 1종 면허도 없는 내가, 도로 위에서 거대한 차체를 끌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었지만, 끊임없이 나 자신을 의심했다.


내 곁에 앉아 있던 친구는 초등학교 시절 함께 놀던 친구였다. 그 시절의 순수와 웃음을 닮은 존재. 그 친구가 갑자기 나와의 관계를 거래로 만들었다. 이유 없이 함께라면 좋았던 사이였는데. 이제는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값을 매겨야 하는 관계가 되어버린 걸까.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던 내게, 저 멀리서 누군가 손짓했다. 젊은 남자였다. 긴 머리와 독특한 귀걸이, 부드럽고 섬세한 얼굴. 여자라 해도 믿을 만큼 중성적이며 매력적인 그가 눈짓으로 나를 불렀다. 나는 그를 따라 걸었다. 그에게 내 속을 털어놓고, 답을 얻고 싶었다.


그는 커다란 건물 앞으로 나를 데려갔다. 두 겹의 육중한 돌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나는 멈춰 섰고,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밀어보라’는 듯. 잠겨 있을 거라 믿었던 문이 내가 두 손으로 밀자, 스르르 열렸다.


그 안은 생각보다 훨씬 넓고,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편안한 공간이었다. 창작의 내면, 무의식의 심연처럼. 나는 남자에게 물으려 했다. 친구에게 정말 돈을 줘야 할까. 이 관계에 어떤 책임이 내게 있는 걸까. 그는 가만히 말했다.

“그렇게 간절하면, 향기를 관리해.”

그의 입술이 내 입술 근처로 훅 다가왔다. 심장이 뛰었다.


*


2종 면허조차 장롱에 넣어두고, 운전을 포기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런 내가 꿈속에서라도 트럭을 운전하고 있던 건 요즘 시작한 글쓰기 100일 챌린지 때문일 것이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창작은 내게 여전히 기쁨인가, 아니면 일이 되어 버렸는가.

무거운 트럭은 내 삶의 무게이자, 창작자로서 내가 지고 있는 책임의 상징이었다.


어릴 적 친구는 내 순수한 자아였을지 모른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시절, 아무것도 바라지 않던 내 안의 어린 자. 이제 그조차도 내게 뭔가를 요구하고 있다. 순수한 동행이 거래로 오염되는 것, 그것은 내가 여전히 결과나 보상에 얽매여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리고, 그 젊은 남자. 그는 창작을 향한 나의 열망,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감각, 내 안의 아니무스였다. 그는 내게 ‘질문하라’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시선과 그의 침묵이 그렇게 속삭이고 있었다. 중요한 건, 답이 아니라 묻는 태도라는 듯.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두 겹의 문은 내가 질문을 안고 다가가자 생각보다 쉽게 열렸다. 구하지 않고 두드리지 않아서, 얻지도 열리지도 않았던 것일까.


묻는 감각. 그것이 창작의 시작이다.

나는 모든 걸 알지 못한다. 그러니 계속 물어야 한다.

무거운 트럭을 몰며, 또다시 문 앞에 설 때마다, 망설이지 않고 밀어보겠다. 언젠가는, 그 안에 숨어있는 내 진짜 이야기에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정말 기뻤던 건 내가 설레며 깼다는 것이다. 한동안 기억하지 못하고 모두 놓쳐버렸던 꿈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는 것도. 이제는 무력감과 공허감만 남았다고 믿었지만, 내 안의 자아는 여전히 글을 쓰며 몰입하고 모든 걸 쏟아부을 때의 그 희열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설렘으로 기다린다. 다시 황홀한 마음으로 글을 쓸 날을.



WechatIMG9768.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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