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왜 노동의 대가를 말하면 죄인이 되는가

100일 챌린지_Day 55

by 윤소희

글을 쓴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돌을 깎아내는 일이다. 눈앞에는 아무것도 없지만, 시간과 마음을 갈아 넣으며 조금씩 형상을 빚는다. 완성된 문장은 독자의 눈에 가볍게 흘러가지만,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노동의 잔해가 켜켜이 쌓여 있다. 그럼에도 글쓰기만큼 쉽게 ‘값없는 일’로 취급되는 노동도 드물다. 글은 재능이고, 글쓰기는 즐거움이니, 돈과는 무관할 것이라는 익숙한 가정 때문이다.


나 또한 그 가정 속에서 오래 침묵했다. 원고료를 묻지 못한 채, ‘설마 정해져 있겠지’라며 스스로를 달랬다. 글은 마음이 앞서는 일이니, 숫자를 입 밖에 내는 순간 품위가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는 종종 아무 말도 못 한 채 시간을 내주고, 마음을 태워 문장을 쓰고, 끝내 대가 없는 노동자로 남았다.


딱 한 번 용기를 내어 먼저 물었던 적이 있다. 상대는 책을 여러 권 낸 저자였으니, 내 시간을 소중히 여길 거라 믿었다. 그러나 돌아온 건 존중이 아니라 낙인이었다. 나는 ‘계산적인 인간’으로 불리며 그의 세계에서 지워졌다. 과연 계산적인 이는 누구였을까. 내 노동의 가치를 셈하기 싫었던 쪽은 그가 아니었을까.


사정이 어려우면 부탁할 수 있다. 작가들은 언제든 돈이 아닌 이유로 글을 쓴다. 의미 때문에, 보람 때문에, 관계 때문에.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면 기꺼이 펜을 든다. 하지만 그것은 작가의 선택이어야 한다. 의뢰자가 무상으로 가져갈 권리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글은 공기처럼 가볍게 소비되지만, 결코 공짜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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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아 작가는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에서, 돈 이야기가 빠진 섭외 메일을 받을 때마다 울화가 치민다고 했다


이슬아 작가는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에서, 돈 이야기가 빠진 섭외 메일을 받을 때마다 울화가 치민다고 했다.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 드물게 목소리를 높일 때, 그 분노에 귀 기울여야 한다. 글은 누군가의 하루를 쪼개어 바친 시간이며, 작가의 삶을 갈아 넣은 흔적이다. 글을 부탁하는 자라면 반드시 그 무게에 합당한 대가를 명시해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의 예의이고, 상대의 존엄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더 중요한 건 글을 쓰는 우리 자신이다. 원고료를 묻는 일을 죄처럼 여기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의 노동을 하찮게 만든다. 자기 글의 가치를 낮추는 이가 어떻게 독자에게 “이 글을 읽어달라”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자기 존중 없는 글은 결코 타인의 존중을 얻을 수 없다.


최근 병원에 다니며 절실히 깨닫는다. 목과 허리 디스크, 여기저기 관절 통증이 말해준다. 글쓰기는 온몸에 흔적을 남기는, 만만치 않은 강도의 노동이다. 활자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삶을 쪼개어 바친 흔적이다. 그 무게를 외면하는 청탁은 작가의 삶을 소모품으로 만든다.


온몸과 영혼을 갈아 넣어 쓴 글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결코 탐욕이 아니다. 오히려 글을 존중하고, 글을 읽을 독자를 존중하는 태도다. 글을 부탁하는 이는 합당한 대가를 명시함으로써 존중을 표하고, 글을 쓰는 이는 당당히 요구함으로써 스스로의 가치를 지킨다. 모든 걸 떠나, 상대의 시간과 노고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것이 인간 사이의 가장 단순하면서도 근본적인 예의다. 글쓰기의 품은 그 예의를 바탕으로만 살아남는다.



WechatIMG8827.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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