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챌린지_Day 57
짧은 회의 내내 공기가 눅눅하게 가라앉았다. 발언 사이로 오가는 눈빛은 따뜻한 연대가 아닌 이해득실을 재는 저울 같았다. 단체장의 자리를 권하는 목소리에 그 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사적 이익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나는 그 순간 오래 품어온 질문을 꺼내 들었다.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단순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물음이었다.
타인의 노고를 당연하게 여기고, 정당한 대가조차 외면하는 태도를 마주했을 때, 나는 오랫동안 씁쓸함을 지우지 못했다. 사람을 세워주기는커녕, 한낱 도구처럼 소모하는 풍경을 이제 더 이상 숨기지도 않는 것 같아 입맛이 썼다. 그날의 회의는 짧았지만, 내 마음에 ‘공동체의 허상’을 날카롭게 각인시켰다.
나는 ‘함께’라는 말을 믿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제 그 말을 쉽게 믿지 않는다. 겉으로는 연대를 말하면서, 속으로는 서로를 딛고 올라서려는 욕망이 꿈틀대는 장면을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외양을 걸쳤지만 속살은 흥정과 시기, 계산으로 얼룩진 모임들. 그런 자리에 오래 머무를 이유는 없다.
다행히, 나는 다른 얼굴의 공동체도 안다. 명함도, 직함도, 권력도 없는 모임. 위챗과 카카오톡의 단톡방에서 몇 년째 운영하는 독서 공동체가 그렇다. 홍보나 광고가 허락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사적인 이익이 전혀 없다. 오직 책과 삶의 이야기가 오가는 자리. 겉보기에는 허술하고 느슨해 보이지만, 바로 그 허술함 속에서 신뢰가 뿌리내렸다. 의외로 오래도록 우리를 묶어 준 끈은 화려한 약속이 아니라, 이름 없는 느슨함이었다.
단톡방은 대체로 조용하다. 나는 수시로 개인적인 메시지를 받는다. “처음으로 책을 읽고 싶다는 갈증을 느껴 보았다”는 고백을 들었을 때, 내 마음도 함께 뛰었다. 한 권의 책이 누군가의 내면을 흔드는 순간을 지켜보는 일은, 내게도 특별한 선물이니까. 또 어떤 이는 몇 년간 묵묵히 따라 읽던 독서 기록 끝에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 변화들은 요란하지 않았지만, 충만하고 깊었다. 그것은 누군가를 이용한 결과가 아니라, 서로의 가능성을 응원하며 북돋우는 과정에서 맺힌 열매였다.
진정한 연대는 거래가 아니라 신뢰에서 자란다. 사람을 도구로 삼지 않고, 시간을 빼앗아 사익을 챙기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지켜보며, 작은 응원과 격려를 더한다. 그 속에서 읽기와 쓰기는 연대의 결실이 된다. 글은 권력의 거래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글은 신뢰의 토양 위에서, 존중의 물길을 따라 자란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표면만 그럴듯한 모임에 마음을 내어주지 않으려 한다. 계산과 욕망이 엉킨 자리에서 마음을 소모하느니, 이름 없는 공동체에서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며 글을 나누고 싶다. 때로는 한 권의 책이, 때로는 한 줄의 글이 우리를 이어 준다. 언뜻 허술하고 조용해 보이는 이 느슨한 끈이, 혼탁한 세상에서 가장 질기고 단단한 결속이 될 것이다.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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