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도 탈골된다 - 예열을 건너뛸 때

100일 챌린지_Day 58

by 윤소희

학교 양호실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큰아이 이름이 들려오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날 닮아 운동신경은 별로 좋지 않은데, 내 겁은 조금도 물려받지 않은 아이. 이번엔 철봉에서 몸을 날리다 어깨가 빠졌다. 친구들이 찍어준 영상 속의 아이는 한순간 공중으로 튀어 오르듯 날아올랐다. 준비운동 없이 무모하게 힘을 쓰다 얻은 탈골이었다.


얼마 전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러닝을 다시 시작하며 ‘별일 없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에 스트레칭을 건너뛰었다. 처음에는 몸이 가볍게 반응하는 듯했지만, 2주쯤 지나자 고관절이 날카롭게 신호를 보내왔다.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결국 러닝을 멈추어야 했다. 준비운동을 생략한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아이의 탈골이나 나의 통증은 모두 작은 예열을 무시한 데서 비롯된 부상이다.


운동처럼, 글쓰기도 예열 없이 갑자기 뛰어들 수 없다. 준비 없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 사고가 굳고, 문장이 비틀리고, 생각의 길이 자주 끊어진다. 그 끝은 부상 대신 좌절이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허탈감이나 '나는 글을 못 쓰는 사람인가' 하는 열패감은 글쓰기의 탈골과 같다. 오래 달리기 위해, 부상을 피하기 위해, 글에도 몸풀기가 필요하다.


나는 매일 새벽 글을 쓰기 위해, 전날 저녁 작은 장치를 준비한다. 잠자리에 들기 전 책상 위 메모장에 단어 몇 개를 남겨두는 일이다. 그날 마음에 걸린 단어나, 스쳐 간 이미지, 오래 머문 감정을 키워드 형식으로 적어 둔다. 다음 날 새벽, 눈앞의 단어들은 문장의 첫 발자국이 된다. 망설임 대신 출발선이 놓이는 것.


많은 작가들이 자신만의 리추얼로 글을 예열했다. 스탕달은 아침마다 법전을 몇 페이지 읽었다. 뒤마는 장르에 따라 종이 색을 구분해 두었다. 산문은 장밋빛, 소설은 푸른색, 시는 노란 종이. 오든은 차를 엄청나게 마셔댔다. 리추얼은 단순한 습관을 넘어, 글쓰기로 들어서는 ‘문턱’이다.


나의 초기 리추얼은 단순했다. 새벽의 고요 속에서 커피를 내리고, 바흐의 평균율 1번 프렐류드를 반복해 들었다. 따뜻한 머그의 무게, 은은한 커피 향, 단정한 음표들이 차례로 감각을 깨웠다. 그 자극은 일종의 스위치였고, 나는 그 리듬을 따라 곧장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녹내장 진단 후 커피를 끊으면서, 이 리듬이 무너졌다. 한동안 글 앞에 앉는 일이 버겁게 느껴졌다. 그 후 리추얼을 재정비했다. 커피 대신 미지근한 물 한 잔으로 목을 적신다. 몇 개의 다이어리에 짧은 문장을 적어 내려가며 손목을 풀고, 다른 작가의 문장을 필사하며 호흡을 맞춘다. 본격적인 글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예열하는 가벼운 연습이다. 그러나 그 사소한 움직임이 첫 문장을 꺼내는 힘이 된다.


글쓰기에 필요한 준비운동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다. 그저 작은 루틴, 반복되는 습관 하나면 충분하다. 그것이 키워드 몇 개든, 물 한 잔이든,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게 '이제 시작한다'는 신호를 건네는 일이다. 글쓰기도 삶의 다른 움직임과 마찬가지. 몸을 지키듯 마음을 지켜야 한다. 작은 준비를 거치면 글은 한층 더 오래, 멀리 나아간다.



Weixin Image_2025-09-26_222250_298.jpg 윤소희 작가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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