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챌린지_Day 95
거울 앞에 서면 두 얼굴이 마주 선다. 하나는 세상의 눈을 의식하며 미묘하게 미소 짓는 얼굴, 다른 하나는 어둠 속에서 나를 응시하는 침묵의 얼굴. 글을 쓸 때마다 나는 그 두 얼굴을 오가며 흔들린다. ‘이 문장은 내가 좋아하는 문장일까? 아니면 남들이 좋아해 줄 문장일까?’
얼마 전 심리학 실험에서 흥미로운 결론을 읽었다. 객관적인 미모와 행복감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스스로를 예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실제 외모와 상관없이 더 행복했다. 행복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내가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실험 결과를 읽으며 생각했다. 타인이 뭐라 평하든, 내가 내 글을 사랑할 수 있다면 이미 행복한 작가가 아닐까?
하지만 그건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자란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내면의 나침반처럼 품고 산다. 칭찬과 무관심, 비교와 순위. 그 모든 외부의 조각들이 내 렌즈를 흐리게 한다. 결국 나도 모르게 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남들의 눈에 좋아 보일 글을 쓴다. 그때부터 문장은 메마르고, 글쓰기는 서서히 숨이 막힌다.
십여 년 전, 처음 글을 쓰던 날들의 문장을 가끔 다시 읽는다. 서툴고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거기엔 내가 있었다. 논리 대신 마음이 먼저 움직였고, 완벽함보다 진심이 앞섰다. 그때 쓴 문장들은 비뚤고 울퉁불퉁했지만, 나는 그 문장들을 사랑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떨림을 그대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요즘의 글은 매끄럽지만, 온기가 덜하다. 단정하지만, 심장이 덜 뛰는다. 아름다움은 완벽함에서 오지 않는다. 불완전한 문장, 미세한 흔들림, 손끝의 온기가 남은 그곳에서 나는 비로소 살아 있는 글을 만난다. 가끔 일부러 문장의 얼룩을 남긴다. 그 얼룩은 나의 체온이고, 부끄러움이고, 살아 있음의 증거니까. 모든 결점을 지우면 글도 숨을 잃는다.
창작의 행복은 완벽을 향한 도약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껴안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결국 행복한 글쓰기는 완벽한 문장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내가 쓴 문장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기르는 일이다
오늘도 거울 안에는 두 얼굴이 있다. 하나는 타인의 눈을 향해, 다른 하나는 내 안의 진실을 향해. 이제 후자의 빛을 조금 더 밝히려 한다. 남들이 좋다 말하는 글보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글을 쓰기 위해. 결국 작가의 행복은 내 문장을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으니까.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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