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사랑이란, 온실 밖으로 나와 함께 서는 일

상해온실화원

by 윤소희

사랑이란, 온실 밖으로 나와 함께 서는 일

온실은 계절을 속인다. 바깥이 얼마나 춥든, 안쪽의 공기는 언제나 안전한 온도로 조절된다. 상해온실화원도 그랬다. 커다란 유리 건물 안에서 새순은 바람 없이 흔들리고, 꽃은 위험을 모른 채 피어났다. 모든 생장은 보이지 않는 조정과 노동 위에 간신히 유지된다. 완벽하게 관리된 자연 앞에서 나는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그 투명한 평온이 나를 닮았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온실 속 식물처럼 나는 대개 싸우지 않는다. 오해도, 조롱도, 때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시선도 대부분 혼자 삼킨다. 맞서기엔 내가 너무 쉽게 부서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게 보호는 미덕이었고, 회피는 생존 방식이었다. 그렇게 나는 오래도록 자신을 온실 안에 가두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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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말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굳게 붙잡고 있던 의미들은 어느새 서로 다른 기억이 되었고, 어떤 시간은 설명되지 않은 채 가벼운 쪽으로 기울어졌다. 나는 이해하려 애쓰며 오래 기다렸고, 대답이 오지 않는 거리 속에서 계절만 조용히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사람을 흔드는 건 사건이 아니라, 지속되는 침묵일 수 있다는 사실을.


달라진 기류가 나를 향한 것이었다면 회피하고 말았을 텐데, 사랑하는 이를 흔든다고 느낀 순간, 내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일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을 모를 만큼 어리석지 않았지만, 그 가능성을 계산하는 시간보다 한발 먼저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중


나를 보호하려던 선택들은 대개 나를 온실 안으로 물러나게 했고, 안전은 언제나 나를 조금씩 흐릿하게 만들었다. 나 자신이 아닌 타자를 지키겠다고 몸과 마음을 앞으로 이동시키자, 나는 비로소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강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자리에 섰기 때문이다.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믿어온 사랑이란, 서로를 비바람에서 완벽하게 숨겨 주는 일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온실의 식물들처럼, 나는 다치지 않는 것만을 사랑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현실은 달랐다. 사랑은 서로를 온실 안에 숨겨주는 일이 아니라, 이 거대한 도시가 만들어내는 세찬 비바람 속으로 함께 걸어 나가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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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전히 강한 사람이 못 된다. 매서운 말들이 무섭고, 상처는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다. 하지만 누군가 내가 사랑하는 이를 흔들 때, 나는 예전처럼 유리 벽 뒤로 숨지 않는다. 대신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발을 내디딘다. 그 한 발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지는 못할지라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에게 더 분명히 알려줄 것이다.


사랑이란, 온실 밖으로 나와 함께 서는 일.

그의 비를 대신 맞아줄 수는 없어도, 그와 같은 비에 젖을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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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1829.HEIC 윤소희 작가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2017년 <세상의 중심보다 네 삶의 주인이길 원해>를 출간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24년 단편소설 '지금, 정상'으로 소설가 등단.

2006년부터 중국에 거주. ‘윤소희 작가와 함께 책 읽기’ 등 독서 커뮤니티 운영.

전 Bain & Company 컨설턴트, 전 KBS 아나운서. Chicago Booth MBA, 서울대학교 심리학 학사.

저서로는 심리장편소설 <사이코드라마>와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산만한 그녀의 색깔 있는 독서> <여백을 채우는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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