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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Dec 14. 2020

그런 눈, 그런 꿈이 그리운

눈도 꿈도 너무 쉽게 녹아 사라지는 시대

두툼한 커튼을 걷자 쏟아지는 하얀빛, 춥다는 것도 잊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강아지도 아니건만 밤새 내린 눈 위를 겅중겅중 뛰고 싶다. 십여 년째 눈이 귀한 곳에 살고 있기 때문일까. 상하이는 겨울에도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지 않아 눈 대신 비가 내린다. 베이징은 춥지만 건조해 눈이 거의 오지 않는다. 그래서 겨울하면 눈 대신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스산한 날씨나, 맵고 쨍한 찬바람을 뚫고 벌거벗은 가로수 사이를 걷는 황량한 풍경이 먼저 떠오르곤 한다.

 

눈이 귀한 베이징에 오랜만에 폭설이 내린 겨울,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인 풍경이 상서롭게 여겨졌다. 때마침 삶에서 많은 것들이 새로 시작되었기 때문인지,  그후로 내게 눈은 곧 꿈이었다.

 

온통 눈과 꿈으로 덮인 곳에 가 본 적이 있다. 전 세계에서 산타에게 보낸 편지들이 눈처럼 쌓여있는 핀란드 로바니에미. 촬영을 위해 거구의 산타와 함께 순록 두 마리가 끄는 작은 썰매에 앉았다. 동화나 영화에서처럼 날아오르는 대신 순록들은 아주 느릿느릿 걸었다. 힘겹게 걸음을 내딛는 순록을 보며 썰매에 앉은 나는 웃을 수 없었다. 넓은 눈밭을 반 바퀴도 채 돌지 못해 순록의 앙상한 뿔이 모두 뽑혀 나갔기 때문이다. 마침 뿔 갈이 시즌이었다고는 해도 뿔이 빠지도록 힘겹게 썰매를 끌던 순록을 보며, 누군가의 꿈이 다른 이를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로바니에미 가리키는 표지판 (좌) / 순록 (우)


제설기로 뿌리는 인공눈

 


펄펄 내리는 함박눈을 본 일이 언제던가. 이제는 어쩌다 눈이 와도 가루처럼 포슬포슬 내리다 발자국만 겨우 내는 자국눈이다. 꿈도 눈도 너무 쉽게 녹아 사라진다. 자꾸만 사라지는 눈도, 꿈도 아쉬워 제설기로 인공눈을 뿌려보지만, 억지로 만들어낸 눈은 빈틈이 너무 없다. 빈틈이 많아 밟을 때마다 뽀드득 소리를 내고 또 그래서 서로 잘 뭉쳐지는 눈, 저마다 다른 결정으로 아름다운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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