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은 하지 않아도 가슴에 가만히 쌓여갈 것이라 믿으며
새벽 네 시 반 잠이 깨어 나와보니 온 세상이 하얗다. 서걱서걱, 눈 내리는 소리인지 내 속에서 나오지 못한 말들이 서로 비벼대는 소리인지. 기우뚱하는 몸의 균형을 맞추며 얼른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우선인 줄은 알지만, 금세 사라져 버릴 이 순간을 잘 담아두고 싶었다. 꼬박 2년 만에 아빠를 만나고 돌아오자, 좀처럼 눈이 오지 않는 베이징에 눈이 내린다.
아빠가 네 식구를 두고 다른 삶을 찾아 떠난 지 20년. 남은 식구들은 마주치기만 하면 깨진 마음의 파편으로 서로를 찌르거나 찢었다. 악다구니를 쓰면 쓸수록 파편에 맞은 상처는 진물을 내며 곪아갔고, 결국 시골로, 반지하 셋방으로, 그리고 멀리 타국으로 우리는 뿔뿔이 흩어져 혼자가 되었다.
10년쯤 흐른 후 다시 만났지만, 이산가족 상봉 장면에서 보던 격정적인 기쁨 같은 건 없었다. 새 식구가 생긴 집에서 나는 손님처럼 반듯한 대접을 받았고, 나 역시 잠시 들른 객처럼 격을 갖췄다. 긴 시간 고아로 지내온 타성 때문일 수도 있고, 더 이상 무너지고 싶지 않은 안간힘일 수도 있다. 진돗개들이 펄쩍 뛰며 아빠에게 안길 때, 문득 어릴 적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지만 기억 속 다정한 부녀의 모습은 어쩐지 낯설기만 하다.
개의 머리를 쓰다듬던 아빠가 고개를 돌려 내게 물었다. 멀쩡히 살아있는 아비를 두고 왜 다른 ‘아버지’가 필요하냐고. 그 순간 많은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도피하듯 떠나 빚으로 시작한 유학 생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밤마다 가위에 눌리고 수면제를 먹어도 잠들지 못하던 밤들. 밥 대신 술을 들이부으며 스스로에게 함부로 하던 시간들. 목숨마저 놓아버리고 싶던 그때 내게 손 내밀어준 건 바로 다른 ‘아버지’였다. 그때 아빠는 어디에 있었느냐는 말이 혀끝에 눈송이처럼 잠시 매달렸다 녹아버렸다.
어떤 말은 하면 할수록 더 전해지지 않는다. 그럴 때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듣기만 한다. 아무 말 없이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어두운 새벽 하얀 눈길을 만나는 것처럼 자주 오지 않는 그와의 순간을 잘 담아두고 싶어서.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들이 눈이 되어 서걱서걱 내린다. 어떤 말은 가슴에 가만히 쌓여갈 것이라 믿는다. 내가 잠든 사이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린 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