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없는 스핑크스
남편의 연애편지를 발견했다. 이사 준비를 위해 평소에는 존재조차 잊고 있던 물건들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먼지 속에 낡은 종이들을 접어 꽂아 둔 작은 상자가 눈에 띄었다. 손으로 적은 연락처들, 이제는 존재하지 않을 오래된 전화번호들 사이에서 문득 낯선 이름이 보였다.
편지였다. 대학노트를 찢어 쓴 편지 말미에는 남편의 이름이 적혀 있다. 고이 접어 간직해 둔 걸 보면 결국 편지는 그녀의 손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편지에는 연도도 날짜도 없었지만 ‘새벽’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가 고민하며 세웠을 밤과 편지를 쓰며 맞았을 그 새벽을 가만히 상상해 본다. 그녀는 결국 받아 보지 못했을 그의 마음을.
없애버릴까, 잠시 고민하다 다른 상자에 넣어 두었다. 편지를 버리려는 순간 가슴 한쪽이 저릿했기 때문이다. 그의 손글씨와 젊은 날 그의 마음을 차마 버릴 수 없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천천히 읽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겨 가슴 아파하는 절절한 사연이나 사랑에 빠진 남녀들이 몰래 주고받는 밀어 따위를 기대했던 나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오래 머뭇거리다 점잖게 떠나보내는 이의 예의 바름과 아쉬움 같은 것뿐. 정작 남편은 ‘비밀 없는 스핑크스*’였다.
질투 나는 대목을 발견하기를 정말 바랐던 걸까. 연애편지를 훔쳐보았음에도 남편의 비밀 같은 건 찾아낼 수 없었지만, 어쩌면 채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 남아있음에 안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을 테니까.
비밀의 방을 지키는 문지기임에도 정작 자기 자신은 비밀이 없던 스핑크스. 어쩌면 그는 그 자체가 ‘비밀’이었을 것이다. 호기심과 설렘으로 먼지 쌓인 낡은 문서들을 다시 뒤적인다. ‘비밀 없는 스핑크스’의 진짜 비밀이 여전히 궁금하기에.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소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