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일단 한 번 찍히면

낙인이론과 인신공격의 오류

by 윤소희

단편소설: <스마트한 당신만 읽으세요> 4화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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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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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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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저… 박 이사님, 뭔가… 실수가…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분위기가 급격히 냉각되며 썰렁해집니다. 얘기를 할까, 말까, 한다면 언제 일어날까를 고민하느라, 김은 정작 이미 그 타이밍이 넘어갔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산통을 깨는 소리를 던지고 만 겁니다. 팀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박의 눈치를 살피는데, 박이 김을 노려보며 입을 엽니다.

실수? 알긴 아나 보네. 당신이 벨류에이션(valuation: 기업가치평가)할 때 실수한 거 다 알고 있으니, 빨리 수정해서 가져와! 그런 엉터리 숫자를 어떻게 클라이언트한테 넘겨주나?


저런, 백지장도 맞들면 나태해지는 링겔만 효과(Regelmann effect)와 지성(知性)도 모이면 집단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가 된다는 걸 김은 몰랐던 거군요. 당신도 바보 같은 회의라면 이미 수도 없이 봐 왔겠죠? 말도 안 되는 상사의 의견에 동조하고, 의심을 억누르고 언쟁과 반대를 피하고, 그렇게 결정된 잘못된 합의 사항을 또 합리화하고.


평소 대인관계에 소홀했던 김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주관적인 감정과 우유부단한 믿음이 똘똘 뭉쳐 이제 팀은 김을 희생양으로 지목해 낙인찍기 시작합니다. 박이 없는 자리에서도 팀원 전체가 동조해 김을 공격합니다. 심지어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습니다. 불쌍한 김은 낙인이론(labeling theory)과 인신공격의 오류(ad hominem fallacy)의 희생양이 된 겁니다. 불쌍한 김은 회식 자리에도 끼지 못하고 남아서 자료들을 얼토당토 안 한 거짓 숫자로 둔갑시키기 위해 골머리를 썩습니다.


따돌림.jpg


박은 프로젝트 후 퍼포먼스 리뷰에서, 김의 자료 분석 능력 부족과 꼼꼼하지 못한 태도를 지적합니다. 심지어 스태핑 매니저에게 부탁해 김을 새로 시작된 장기 프로젝트에서 제외시켜 버리기까지 합니다. 김은 온 더 비치(on the beach: 스태핑이 되지 않아 쉬는 상태) 신세를 면치 못합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김의 평가가 형편없는 걸 보고, 다른 매니저들도 김을 기피하게 된 거죠. 아마도 솔드 아웃(sold out: 프로젝트가 많아 100% 스태핑 되는 상태) 될 때까지는 스태핑 기회가 없을 겁니다.


박은 그저 최근 손을 좀 더 자주 씻는 버릇이 생겼을 뿐입니다. 손 씻음과 함께 마음의 죄 사함을 입는 놀라는 경험을 한 후부터 말이죠. 가정원칙(as if principle)에 따라 손 씻는 행위가 ‘속죄’와 ‘정화’의 감정을 촉발한다는 걸 까맣게 모른 채 말입니다. 뭐, 죄의식이 클 때는 샤워가 더 효과적이겠지만요.


발가벗겨진 채 거꾸로 매달려 있는 모습, 머리부터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 시꺼먼 도사견 앞에 묶여 벌벌 떨고 있는 모습, 발가벗겨진 남녀 인간들을 물건처럼 쌓아놓은 피라미드, 얼굴이 완전히 짓이겨져 모자이크 처리 없이는 공개할 수 없는 사진들.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인간 이하의 고문과 성적 학대가 자행된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를 당신도 기억할 겁니다. 설마 아직도 그 잔혹한 사진을 한 장도 보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구글링해 보시죠.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바로 실감할 수 있을 겁니다. 더 소름이 끼치는 건 피를 흥건히 흘리며, 인간 이하의 모욕과 고통을 받고 있는 포로들 앞에서 웃으며 사진을 찍는 가해자들의 표정입니다.


아부그라이브.jpg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source: 영국 텔레그라프)


책임자라 할 수 있는 미국 정부의 주장대로 정말 일부 정신 나간 천박한 사디스트들의 행동일 뿐이라고 간단히 치부해 버리면 그만일까요?




(TO BE CONTINUED)



*글의 목적을 위해 전략 컨설팅의 프로젝트와 컨설턴트에 관한 이야기나 묘사가 과장되게 꾸며져 있습니다. 실제와는 전혀 다른 소설임을 기억해 주세요.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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