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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ul 03. 2020

나비들이 예민한 게 아니라 인간이 독한 거죠

<나비> - 헤르만 헤세

완주에서 보이차를 마시며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그곳의 희귀 나비들이 최근에 사라진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물론 이기적인 집단의 무분별한 개발 때문이었다.  

환경을 지키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노란 수건을 목에 메고 걷기로 했다는 계획을 들었다. (발대식 7월 25일) 


“그러고 보면 나비들이 참 예민해요. 환경이 조금만 나빠져도 금세 사라져 버리고.” 

“인간이 독한 거지요.” 


베이징으로 처음 이사를 갔을 때, 미세먼지 때문에 거의 매일 두통을 앓고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 햇빛이 부족해서. 몇 년이 지나자 웬만한 미세먼지에는 마스크도 끼지 않게 되었다. ‘독한' 인간인 나는 금세 적응해 사는 것이다. 속이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쉽게도 만나지 못한 완주의 희귀종 나비를 떠올렸다.  

헤르만 헤세의 <나비>까지. 


“나는 나비나 그 밖의 덧없는 아름다움에 대해 늘 어떤 관계를 지녀왔다. 반면에 지속적이고 확고한, 이를테면 견고한 것과의 결합에서는 늘 실패했다.”
-헤세의 편지 중


열여섯, 열일곱 살 때, 열렬히 사랑했던 작가다. 

그때는 ‘지속적이고 확고한, 이를테면 견고한 것’이 아니라 나비와 같이 ‘덧없는 아름다움’에 시선을 둘 수 있었기에 그의 글들을 사랑할 수 있었으리라. 


<나비>는 어른이 되어서 처음으로 읽게 된 헤세의 글이었는데 

내가 조금은, 아니 어쩌면 많이 변했음을 깨닫고 서글퍼졌다. 


아름다운 나비의 그림만으로도 눈이 황홀해지는 책. 


<나비> - 헤르만 헤세
<나비> - 헤르만 헤세


그것은 결코 동물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화려하고 삶의 무게를 지닌 어떤 생물의 최후요 최고의 상태다. 


햇빛 내리쬐는 꽃가지 위에 나비가 앉아 있거나 숨을 쉬며 천연색의 날개를 이리저리 움직일 때, 내가 살금살금 다가가 번쩍이는 빛의 점이나 투명한 날개의 혈관 또는 깨끗한 더듬이의 갈색 수염을 볼 때의 느낌은 그 이후의 생활에서는 거의 느껴보지 못한, 부드러운 기쁨과 거친 욕심이 혼합된 긴장과 희열이었다네.


짧은 생애와 아름다운 무상함에 대한 표상으로, 동시에 단계적 성장이라는 변신에 대한 개방성의 표상으로 나타나는 나비를 우리는 헤세의 모든 작품들, 단편이나 장편, 관찰기나 시 또는 제목만 보아서는 무언지 알 수 없는 작품들에서 만난다. (폴커 미켈스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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