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아닌 몸으로 글쓰기
글은 무엇으로 쓰는가?
글을 머리로 쓰는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머리로 생각하고, 상상하고, 구성하고 문장을 만든다고. 그러다 허리디스크로 꼼짝없이 몇 달 침대에 누워 지내야 했을 때, 그 생각이 얼마나 무식하고 순진한 생각인지 깨닫게 되었다.
책상 앞에 앉을 수 없으니 노트북을 쓸 수 없었다. 대신 스마트 폰의 받아쓰기 모드를 이용하거나 녹음을 해보기로 했다. 오래전에 받아쓰기 모드를 한 번 써보고 오류가 너무 많아 다시 고치는데 시간이 더 들었던 기억이 나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몇 년 새 기술이 얼마나 발전했겠나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받아쓰기 기능의 기술 수준이 아니었다.
받아쓰기 모드는 생각보다 내 말을 잘 알아들었지만, 막상 받아쓰기 기능을 실행시키고 나니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분명 머릿속에 쓰고 싶은 문장들이 많았는데, 갑자기 그 모든 말들이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 만약 글을 머리로 쓰는 거라면, 머릿속에 들어 있는 문장을 손으로 끄집어내는 것과 입으로 끄집어내는 것이 왜 이리도 다른가? 결국 글은 머릿속이 아니라 손끝에 있었음을 깨달으며 받아쓰기 기능 쓰는 걸 포기했다.
“로즈,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걸세.”라고 말한 리처드 로즈 외에도 수많은 작가들이 글은 엉덩이로 쓰는 거라 주장했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든 그렇지 못했든, 글을 쓰려면 매일 일정 시간 글을 쓰기 위해 앉아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글은 발로 쓴다고 주장하는 작가들도 많다. 기사문 작성처럼 현장을 발로 뛰면서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쓰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순수한 걷기 예찬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다. 많이 걸어야 글이 나온다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장 자크 루소, 빅토를 세갈렌, 피에르 쌍소, 랭보… 글을 쓰는 수많은 사람들이 걷기를 즐겼다. 그들은 걷기를 위한 걷기, 순수한 걷기를 예찬했다. 여행이나 운동이 목적이 아닌 걷기 말이다. 걸으며 생각이 정리되고, 걸으며 자기 자신에게 충실해지고, 걸으며 어수선하고 조급하게 돌고 있는 세상의 속도에서 벗어나고, 걸으며 다양한 감각에 집중하고, 걸으며 정신이 그 안에 감겨드는 것을 느끼고. 수많은 작가들이 쓰기 위해 걸었고, 그들은 진정 발로 글을 썼다.
글은 무엇으로 쓰는가?
한때 글을 머리로 쓴다고 믿었던 나는 이제는 안다. 글은 머리가 아닌 그 모든 것, 곧 몸으로 쓰는 것이라는 걸. 이 길 위에서 여전히 소란스러운 머리는 잠시 꺼두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