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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ug 09. 2020

최고의 일탈은 바로 OO과의 연애!

패밀리 밴드 YESS - 자우림의 '일탈'을 연주하며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할 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신도림 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자우림의 ‘일탈’ 가사 중


생애 첫 일탈은 여덟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운동회를 하던 날 옆에 나란히 서있던 한 여자아이가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하얀 엉덩이를 드러내고. 내가 그 애 바지를 내려버렸기 때문이다. 개구쟁이 남자애들이 그랬다면 차라리 이해가 되었을 텐데. 당시 나는 전교에서 가장 얌전하고 조용한 아이였다.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하기는커녕 쉬는 시간도 화장실조차 가지 않고 인형처럼 앉아 있었으니. 나 스스로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 어쩌면 그때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처음 대면한 건지 모른다. 


중고등학교 때 야자 ‘땡땡이'치는 건 자주 있는 일이었는데, 하루는 무작정 기차를 탔다. 지명은 기억나지 않는데, 강가에 억센 갈대가 마구 솟아 있고 강물이 깊고 푸르게 흐르고 있었다. 억센 풀을 헤치며 강으로, 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수영을 못하던 내가 어디까지 들어갈 수 있을지, 교복이 어디까지 젖을지 궁금했다. 그러다 혹시 죽는다 해도 그리 나쁠 것 같진 않았다.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는 사람이 무슨 재미로 삶에 집착하겠는가. 강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다, 갑자기 '펄쩍' 뛰어오르는 것에 놀라 혼비백산해 도망쳐 나왔다. 때 맞춰 뛰어 오른 개구리 한 마리 덕분에 유쾌하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공부를 너무 열심히 해 피곤한 것처럼 하품도 해주면서. 


학부 때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특히 '이상심리학(Abnormal Psychology)'에 매료되었다. 소위 정상이라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표준(norm)들이 너무 부조리하고 부당해 보여서일까. '이상’ 행동들에 자꾸 끌렸다. 음식을 거부하는 아노렉시아와 먹기를 거부하다 갑자기 폭식하고 토하는 불리미아를 반복하기도 했고, 두 달 동안 초콜릿과 물, 커피 말고는 다른 음식을 일절 거부하기도 했다. 다중인격장애자처럼 다른 이름, 다른 성격으로 살아 보기도 하고 캠퍼스 잔디밭에서 미친 사람처럼 소리지르기도 하고. 


지루함을 이기기 위해서라면 겨자를 잔뜩 바른 빵이라도 씹어야 했던 나는 젊은 날 분명 거침없이 살아왔다. 하지만 일탈도 밥먹듯이 하면 더 이상 일탈이 아니다. 삭발을 하든, 겨울밤에 벗고 조깅을 하든, 그 정도의 일탈로 과연 화끈하고 신난다고 느낄 수 있을까. 


일탈을 심심풀이 땅콩처럼 여기는 요즘, 다들 벗어나고 싶어 안달할 때 벗어나지 않고 그 선을 지키는 것, 그게 오히려 화끈하고 짜릿한 게 아닐까. 모든 일탈의 욕망을 상상의 영역으로 집어넣고, 경계선에서 서 넘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선을 지키는 그 팽팽한 긴장감을 즐기고 싶다. 요즘 그런 나를 가장 매혹시키는 일탈은 바로 문장과의 연애, 문장과의 일탈! 그보다 짜릿한 일탈을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패밀리 밴드 YESS를 통한 소소한 일탈. 

아이들이 밴드에서 역할 바꾸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람에, 음치가 보컬을 맡았다. 

보컬 데뷔하자마자 은퇴했지만. 


패밀리 밴드 YESS의 연주 - 자우림의 '일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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