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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ug 14. 2020

통영에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은 이유

<일곱 해의 마지막> - 김연수

백석은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많은 시인들이 백석의 모든 시편을 달달 외우는 걸로 문학수업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내가 알던 시인도 그랬고. 나는 시인도 아니고 시를 잘 안다고도 할 수 없지만 백석의 시들을 좋아한다. 사투리 때문에 수시로 각주를 살피며 읽어야 하지만, 그의 시를 읽고 있으면 아름다운 풍광과 소리가 살아 움직임을 느낄 수 있어 읽을 때마다 매혹되곤 했다. 사랑하는 여인 '란'을 친구에게 뺏긴 막막함의 시간들이 우러나서인지 그의 시에는 어딘가 깊은 슬픔이 묻어 있는데 그게 참 좋다.


백석의 시 중 유독 좋아하는 시 ‘통영’에서, 백석은 사랑하는 여인 ‘란’의 이름을 ‘천희’라고 불렀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비밀이 풀렸다. 


통영
    - 백석

옛날에 통제사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千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붉으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통영 사람들이 처녀를 일컫는 말인 ‘처니’라는 사투리를 평안도 출신인 기행이 ‘천희’라는 이름으로 잘못 알아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소설 안에서 백석도, 김연수도 흐릿해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일곱 해의 마지막> - 김연수


“비. 비는 이렇게 길게 떨어지는 소리입니다.”
그러자 벨라가 그 동작을 따라 했다.
“그럼 바람과 바다는 어떻게 말합니까?”
기행은 제 손등을 당겨 입 앞에 대고 말했다.
“바람. 바람이라고 하면 이렇게 바람이 입니다.”
이번에도 벨라가 그 동작을 따라 했다.
‘그리고 바다라고 하면, 조선인들은……”
그는 손을 들어 어둠 속 동해를 가리켰다.
“저절로 멀리 바라보게 됩니다. 바다는 멀리 바라보라는 소리입니다."


“숲이 비어 있는 것을 보는 사람도 시인이고, 폐허가 꽉 차 있는 것을 보는 사람도 시인이지요. 저는 모든 폐허에서 한때의 사랑을 발견하기 위해 시를 씁니다."


책 속에 들어있던 엽서 두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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