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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ug 21. 2020

필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결심'

필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결심'

암투병 때문인지, 글이 깊어졌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의 시간을 끝까지 버텨내어 통과하게 해주는 것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때 끝까지 존엄과 품위를 지킬 수 있는 것도 결국  

스스로가 선택한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결심이다.

나는 살기로 결정했다. 
병과 싸우는 게 거짓말처럼 수월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전처럼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설사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 하는 순간에도, 가면 안의 나를 탄탄하게 유지하게 해주는 ‘생각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허지웅의 말은 마침 하루 전에 읽은 <사람에 대한 예의>에서의 ‘자기만의 원칙’이나 ‘자기 기준’과도 통한다.


https://brunch.co.kr/@yoonsohee0316/322


역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결심이다. 


<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친필사인본
     거창한 결론이 삶을 망친다면 사소한 결심들은 동기가 된다.    


     사실 결론에 집착하는 건 가장 피폐하고 곤궁하고 끔찍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가장 훌륭한 안식처다. … 죽음에만 몰두하고 있을 때는 다른 사소한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다른 사소한 것들을 신경 쓰지 않고 있는 동안, 나는 죽음 이외에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살기로 결정하라고 말하고 싶다. 죽지 못해 관성과 비탄으로 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기로 결정하라고 말이다.


피해의식은 사람의 영혼을 그 기초부터 파괴한다. 악마는 당신을 망치기 위해 피해의식을 발명했다. 결코 잊어선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 가면 안의 내가 탄탄하지 못하면 가면을 쓰든 안 쓰든 아무 차이가 없다. 비빌 구석이 필요하다. 생각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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