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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Sep 14. 2020

우리는 바이러스가 아니에요

중국 칭다오 격리 Day 2

격리 기간 내내 세 끼 도시락은 정해진 시각(오전 8시, 12시, 저녁 6시)에 문 앞으로 배달된다. 도시락을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를 바로 수거해 가면 좋으련만, 쓰레기는 하루에 딱 한 번 오전 8시에 수거해 간다. 


방마다 노란 쓰레기봉투가 놓여 있다. 노란 봉투는 '의료용 폐기물 (Infectious Medical Waste)’ 봉투. 도시락을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뿐 아니라, 휴지 등 일반쓰레기, 생수병 등 재활용 쓰레기까지 모두 의료용 폐기물로 분류되어 함께 버려진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벌써 코로나 핵산 검사를 2번이나 받아 ‘음성(negative)’임을 증명했음에도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는 ‘바이러스 덩어리’ 취급을 받는다.  


의료용 폐기물 봉투에 담긴 하루치의 쓰레기



오전 7시 반쯤 하루치의 쓰레기가 담긴 의료용 폐기물 봉투를 문 앞에 놓았다. 다른 방 문 앞에도 쓰레기봉투 몇 개가 보인다. 한쪽 복도 끝에 있는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비쳐 든다. 눈부신 햇살을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니 복도 반대편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이 층에 격리되어 있는 사람들이 나갈 수 없도록 문을 봉쇄해 놓은 것이다. 저 문은 밖에서 잠겨 있겠지, 생각하니 비로소 진짜 ‘감금’되어 있다는 것이 실감 난다. 


복도 한쪽에는 창에서 스미는 햇살이, 다른 한쪽에는 굳게 봉쇄된 문이 보인다



오전 8시 배달된 아침 식사를 받기 위해 문을 열었다. 독한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찌른다. 쓰레기를 수거하며 복도 전체에 소독약을 뿌려댄 모양이다. 호텔에 처음 도착한 날도 그랬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사람과 짐 가리지 않고 소독약을 뿌려 댔다. 마치 잔디에 물을 줄 때처럼 소독약은 뿜어져 나왔고, 옷과 가방이 모두 소독약에 흠뻑 젖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저 바이러스 덩어리일 뿐. 



문득 창밖에서 선선한 아침 바람이 들어온다. 그제야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창 밖의 하늘은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름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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