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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Oct 17. 2020

이 모멸의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한 나침반, '존엄'

<존엄하게 산다는 것> - 게랄트 휘터

저자가 이 책을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건 강연 경험 때문이었다.
 

타인에게 수단으로 여겨지고, 반대로 타인을 자신의 전략이나 평가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 왜 문제인지를 설명하는 강연이었다. 저자는 우리 모두가 매일 존엄하지 않은 행동을 하고, 공동체 안에서도 스스로의 존엄함을 무너뜨리면서도 인식도 못한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때 무거운 침묵이 이어지다 갑자기 뜨거운 박수갈채로 이어졌다. 


청중들 대부분 일상을 살면서 자신의 행동이 존엄하지 않음을 느낄 때가 많았을 것이다. 그동안 외면하고 있었지만, 숨겨 놓았던 인식의 일부를 대면하게 된 게 물론 아팠겠지만 그래도 기뻐한 것이다. 뜨겁게 박수치는 청중을 보면서 저자는 그동안 외면해 왔다고 해도 스스로의 존엄함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비슷한 경험을 나도 한 적이 있다. 직장에서의 대화법에 관한 강연을 할 때였는데, 핵심을 ‘존엄’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갔다. 스스로에 대한 존엄에 관한 짧은 동화를 얘기하는데, 청중 중에 눈물이 맺히는 분들을 발견했다. 


삶 속에서 상대를 이용하기도 하고, 자신이 수단으로 이용당하기도 하고. 수많은 상황에서 모멸하고 모멸당하며 살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내면에는 그동안 의식하고 있지 못했다 해도 ‘존엄’에 대한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그때 알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존엄은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타인에 의해서만 다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함부로 대할 때에도 상처를 입는다. “자신을 벌레로 여기는 사람은, 짓밟히는 것에 대해서도 불평할 수 없다”라고 칸트는 말한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만 모멸당하고 존엄을 훼손당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스스로의 존엄을 무시하고 짓밟을 때도 많다. 


자신의 존엄함을 인식한 사람은 자기 가치를 확인하려는 욕구에 시달리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이 자신이 존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에 모순될 경우 내면에 일어나는 동요를 느껴봐야 한다 … 존엄한 인생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존엄하지 않은 인생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모멸의 시대를 헤쳐나가기 위해 나침반 역할을 해줄 ‘존엄’을 찾아 붙들어야 한다. 

나침반처럼 자신의 존엄을 확신한다면,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자기 가치를 확인하려 애쓰지도 않게 되고, 남의 존엄을 해치는 일도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은 자신의 존엄을 해치는 일을 하고 싶지 않게 될 테니까. 


자신의 존엄성을 인식하게 된 인간은 결코 현혹되지 않는다


<존엄하게 산다는 것> - 게랄트 휘터


주로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했다. …
하지만 이 신사는 달랐다. 그는 똑같은 동식물을 가리키며 우리가 보고 듣는 이 모든 존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단지 그 아름다움만을 강조했던 것이다.


“아담, 너는 보다 열등한 짐승의 수준으로 스스로 타락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지만 또한 네 지성과 판단 안에 있는 숭고한 능력, 즉 신성한 형태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부여받았다.”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
인간에게는 스스로의 지위를 짐승의 수준으로 낮출지, 혹은 신의 수준으로 끌어올릴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매 순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갈 것을 결정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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