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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Oct 22. 2020

썩지 않으려면 아이처럼 울고, 아이처럼 웃을 것

<이 時代의 사랑> - 최승자 시집

오래된 시집을 꺼냈다.  


‘지린 오줌 자국’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아 썅!”


오래되었지만, 철 지난 과일처럼 무르지 않고 시어들이 살아 있다.  

점잔 빼려는 건 아닌데, 나로서는 차마 속 시원히 꺼내지 못하는 말들이 시 안에서 살아 움직인다.

아마도 그래서 최승자 시인의 시들을 좋아하는 거겠지.


"엘튼 죤은 자신의 예술성이 한물갔음을 입증했고
돈 맥글린은 아예 뽕짝으로 나섰다.
송x식은 더욱 원숙해졌지만
자칫하면 서xx처럼 될지도 몰랐고
그건 이제 썩을 일밖에 남지 않은 무르익은 참외라는 뜻일지도 몰랐다.

그러므로, 썩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르게 사랑하는 법
감추는 법 건너뛰는 법 부정하는 법.
그러면서 모든 사물의 배후를

손가락으로 후벼 팔 것
절대로 달관하지 말 것
절대로 도통하지 말 것
언제나 아이처럼 울 것
아이처럼 배고파 울 것
그리고 가능한 한 아이처럼 웃을 것
한 아이와 재미있게 노는 다른 한 아이처럼 웃을 것.”

최승자 ‘올 여름의 인생 공부’ 중



이제 복숭아는 철이 지나서인지 사놓고 하루 이틀만 지나도 물러 터지기 시작한다.

때리지도 않았는데 어둡게 멍도 들고.


‘이제 썩을 일밖에 남지 않은’

철 지난 복숭아 같은 나


썩지 않으려면,

물러 터지지 않으려면,

축축 늘어지지 않으려면,


‘다르게 기도하는 법을’

‘다르게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무 일도 없이 까르르 웃는 아이처럼,

그렇게 '웃을 것’


웃는 아이와  

함께 웃으며

씨앗을 심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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