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흐느끼다: 행복은 고통에 싸인 선물

양청호수(陽澄湖)

by 윤소희

13 흐느끼다: 행복은 고통에 싸인 선물

@양청호수(陽澄湖)



상처가 희망이다


- 박노해



상처 없는 사랑은 없어라

상처 없는 희망은 없어라


네가 가장 상처받는 지점이

네가 가장 욕망하는 지점이니


그대 눈물로 상처를 돌아보라

아물지 않은 그 상처에

세상의 모든 상처가 비추니


상처가 희망이다


상처받고 있다는 건 네가 살아 있다는 것

상처받고 있다는 건 네가 사랑한다는 것


순결한 영혼의 상처를 지닌 자여

상처 난 빛의 가슴을 가진 자여


이 아픔이 나 하나의 상처가 아니라면

이 슬픔이 나 하나의 좌절이 아니라면

그대, 상처가 희망이다




눈을 떴으나 꼼짝을 하기 싫다. 침대 위에서 뒤척이다 갑자기 떠올랐다, 양청호수에 가기로 한 날이란 걸. 아, 양청호수가 다 뭔가, 오랜만에 늦잠도 잘 수 있는 이 좋은 주말 아침에…. 한참을 투덜거리다 일어나 남편과 아이들을 깨우기 시작했다.


지인들 여럿이 버스까지 대절해 가기로 한 곳은 상하이에서 80킬로미터 떨어진 쟝쑤성(江苏) 쿤산(昆山)에 있는 양청호수(陽澄湖). 그 멀리까지 가는 이유는 내 주먹보다 조금 작은 따쟈시에(大蟹), 즉 상하이 털게를 먹기 위함이다.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게발이 가렵다.(秋风起,蟹脚养)’는 중국 속담이 있다.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상하이 사람들 입에 침이 먼저 고이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을이 되면 이 산, 저 산으로 단풍 구경을 가듯이, 상하이 사람들은 깊어가는 가을 친한 지인들과 함께 황주(黄酒)를 마시며 따쟈시에를 먹어 봐야 인생의 참맛을 느낀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가을이 되자, 시장마다 노끈 같은 걸로 칭칭 동여매 묶어 놓은 털게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어, 털게 철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어차피 아무 양념도 없이 쪄내기만 하면 되는 요리니, 가까운 시장에 가서 털게 몇 마리 사다 집에서 쪄 먹으면 편할 걸 그렇게 멀리까지 가야 하나, 연신 투덜거렸다. 하지만 양청호수가 수질이 좋아 그곳에서 잡힌 털게가 털이 가볍고 살이 달콤해 다른 곳에서 잡힌 것과 비할 수가 없다고 한다. 털게는 물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신선도와 질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멀고 가격이 3배나 비싸더라도 꼭 양청호수에 직접 가서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새벽부터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린 끝이라 땅마다 물기가 가득했다. 남편의 지인들이라 따라 나온 가족들은 낯설었고, 한 가족씩 나타날 때마다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이 많은 사람들이 오직 조그만 털게 한두 마리를 먹기 위해 함께 버스를 빌려 타고 그 멀리까지 간단 말인가? 느지막이 허둥지둥 달려온 마지막 가족까지 나타나자, 바닥 여기저기 고여 있는 물웅덩이를 조심스레 건너며 버스에 오르기 시작했다. 버스는 약속 장소에 나간 지 거의 세 시간이 지나서야 양청호수에 도착했다.


게2.jpg 양청호수(陽澄湖)의 한 식당


민물호수인 양청호수 가에 세워진 식당. 식당 주위 호수에는 커다란 연잎이 무성해 호수의 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진흙 속에서 나지만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고 항상 맑아서 순수함과 무구함을 상징하는 연꽃은 이미 져버려 볼 수 없고, 오직 무성한 연잎만 가득한데, 연잎의 크기가 사람 얼굴보다 크니 물 위로 솟아오른 연잎들이 조금 기괴해 보였다. 무성한 연잎들을 보자 연이 번영과 다산을 상징한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졌고, 천 년 이상 땅에 묻혀 있던 씨앗도 발아가 가능하다는 연의 생명력도 실감할 수 있었다.


게3.jpg
게1.jpg
양청호수(陽澄湖)의 한 식당


식당은 미어터지게 사람이 많았고, 들어서자마자 비릿한 게 냄새가 가득했다. 열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둥근 식탁 가운데는 ‘레이지 수잔 (Lazy Susan: 식탁 위에 놓는 회전 선반)이 돌고 있다. 몇 가지 량차이(凉菜:차가운 요리로 주로 애피타이저로 먹음)와 야채 요리가 나오는가 싶더니 드디어 큰 쟁반에 주황빛 게들이 꽁꽁 묶인 채로 한가득 담겨 나왔다. 우리 테이블에 앉은 한 젊은 여자가 갑자기 깜짝 놀라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 털게를 서빙하는 과정에서 복도에서 털게 한 마리가 바닥에 떨어졌는데, 그냥 줍더니 다시 담아 그대로 내왔다는 것이었다. 중국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았다는 그녀는 어떻게 이렇게 불결한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냐고 불평했지만, 중국 생활을 꽤 해온 다른 사람들이 호응을 안 해주자 이내 잠잠해졌다. 여전히 썰렁하고 조금은 냉랭한 분위기. 그리고 볼품없이 쌓여있는, 심지어 조금은 불결할 지 모르는 털게들.


게4.jpg 따쟈시에(大闸蟹) - 털게


마침내 각자의 접시에 털게를 암수 한 마리씩 분배받았다. 특별한 양념이 첨가된 것도 아니고, 모양이 그럴싸한 것도 아니고, 하얀 접시 위에 달랑 놓인 털게 두 마리는 참으로 성의 없는 요리다. 털게는 작기도 하지만, 살이 얼마 되지 않아 꽉 찬 내장을 먹는다. 배딱지가 둥근 것이 암놈이고 뾰족한 것이 수놈이라더니, 배가 둥글고 볼록한 놈의 배딱지를 열어 보니 정말 주황색 알들이 잘 익어 있다. 수게의 경우 내장은 생식기와 정액을 의미한다. 음력 8월에는 암게를 먹고, 9월이 지나면 수게를 먹는다고 하는데, 음력 8월에는 암놈 배에 황금색 알이 가득 차고, 9월이 지난 수게는 성선(性腺)이 발달해 맛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꽁꽁 묶인 털게의 끈을 풀고 게딱지까지는 어떻게 옆사람 흉내를 내며 열어 놓았는데, 나머지를 어떻게 먹어야 할지 막막하다. 딱딱한 게 껍데기를 벗기는 일, 특히 가느다란 다리 사이의 속살들을 꺼내는 일은 연장과 함께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중국인들이 게를 먹기 위해 만들어 낸 연장의 역사는 기원전 700년인 서주(西周)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배계층이 게를 먹을 때 우아함과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되던 연장들은 당시에는 망치와 집게, 도끼 단 3가지뿐이었으나 쑨원(孙远)이 집권한 중화민국 당시에 현재처럼 8가지 도구로 가짓수가 늘어났다. 받침을 깔고 망치와 도끼를 사용해 게를 분해하고, 가위로 딱딱한 부위를 자른 뒤, 족집게와 숟가락, 꼬챙이를 적절히 이용해 살을 몽땅 빼먹으면 된다. 하지만 식당에서 우리에게 제공한 연장은 겨우 꼬챙이 정도에 가위는 각 사람에게 하나씩 돌아가지도 않았다.


crab.png 게 먹는 도구 8종 세트


드디어 산 채로 쪄 낸 털게의 껍데기를 깨고 속살을 꺼내 상하이식 갈색 식초인 추(醋)와 생강으로 만든 소스에 찍어 입에 넣는데, 고소하고 달콤하며 즙이 많아 입 안 가득 고이는 풍미가 기가 막히다. 공들여 게살을 바르는 데 걸린 시간에 비하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시간은 섬광처럼 짧았다. 음력이 9월이 지나서인지 수게의 속살과 내장이 크림처럼 부드럽다.


따쟈시에는 황주와 함께 먹어야 한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고소한 털게의 내장을 입에 넣고 황주 한 모금을 마시자 입 안에서 맛과 향이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며, 뒷맛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황주는 미주(米酒)라고도 불리며 우리나라 막걸리처럼 누룩 등을 발효시켜 술지게미를 걸러 만든 술이다. 황주는 고량주라 불리는 바이주 (白酒)와 달리 알코올 도수가 20도 이하로 약하고 미색, 황갈색, 적자색 등으로 색이 다양하며 그윽한 향이 있다. 특히 저장(浙江)의 싸오싱주(绍兴酒)가 유명하며, 상하이 사람들을 털게를 먹을 때 이 싸오싱주를 함께 마신다.


게.jpg 따쟈시에(大闸蟹)


한참을 심각하게 게 껍데기를 자르고 부수던 사람들 표정이 점점 환해지기 시작한다. 서먹했던 냉기가 따스한 봄햇살 아래 눈처럼 스르르 녹더니, 여기저기서 화기애애한 대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낯선 환경과 사람들로 시무룩해 있던 아이들도 하나 둘 서로 말을 붙이고 장난을 걸더니 얼마 가지 않아 오래된 친구처럼 함께 놀기 시작했다. 황주 한두 잔으로 발그레진 얼굴들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가득해, ‘행복’이란 두 글자를 절로 떠올리게 한다. 오랜 시간 불편한 버스 좌석에 앉아 있던 시간도, 늦게 나타나 기다리게 했던 가족도, 조금 불친절하고 불결한 식당의 서비스도, 그 순간 모두 용서가 되었다. 이래서들 그 멀리서 따쟈시에를 먹으러 이렇게 찾아오는구나.


따쟈시에로 유명한 빠청(巴城)에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온다. 수 천 년 전 중국 강남 지역은 지세가 낮고 수량은 풍부해 언제나 물난리에 시달렸다. 물난리를 피해 어렵게 농작물을 재배해도, 민물 털게들이 논에서 벼 이삭을 먹어치우고 때로는 사람을 물기도 해 털게를 ‘쟈런총(夾人虫:사람을 꼬집는 벌레)’라 부르기도 했다. 양청호수에 치수 책임자로 파송된 빠지에(巴解)란 사람이 물길 내는 공사를 진행하는 도중에 털게들이 방해가 되자, 둑을 파서 게들을 유인했다가 물을 빼버림과 동시에 불을 놓아 태워 죽이는 계책을 썼는데, 이때 어디선가 참을 수 없이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호기심을 못 견딘 한 사람이 게 한 마리를 깨물어 보니 그 살이 부드럽고 고소해, 그 후 천적이 었던 털게가 없어서 못 먹는 귀한 음식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옛날 게잡이 꾼들이 호숫가에 대나무발로 갑문(闸)을 만들고 등불을 걸어놓으면 빛을 보고 대나무 갑문으로 올라온 게들을 잡았다 해서, 쟈시에(闸蟹)라 불렀다고 한다. 따쟈시에는 양쯔강 하구의 강물과 바다물이 만나는 곳에 알을 낳고, 어린 게로 자라게 되면 강을 거슬러 올라 양쯔강 하류 일의 호수와 강변에서 살을 찌운다고 하는데 지금은 폭발적인 수요 때문에 호수에서 양식을 해도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10월 국경절 하루에만 상하이 사람들이 먹어치운 털게가 보통 300만 마리가 넘는다고 하니, 상하이 사람들의 털게 사랑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벼 이삭을 몽땅 먹어치우고 사람들마저 물어 대 농민들에게 크나 큰 고통을 안겨 준 털게. 그 털게들을 모조리 태우며 속 시원해할 때, 익고 있던 게살이 부드럽고 고소한 최고의 맛까지 선사했으니, 맨 처음 털게를 한 입 베어 물었을 그 사람이 느꼈을 환희를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깨고 벗기기에 귀찮은 고통의 껍데기 속에서 꺼낸 게살이 입 속으로 들어갔을 때, 사르르 녹아내리며 주는 행복감을 음미하며 그저 짐작해 볼 뿐이다.


신은 행복이란 선물을 반드시 고통에 싸서 준다.


깊어가는 가을 연잎은 바람에 흔들리고, 소매를 걷어 부치고 게살을 열심히 바르는 사람들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양청호(阳澄湖)


장쑤성(江苏省)의 쑤저우(苏州)에서 북동쪽으로 약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담수호. ‘상하이 털게’로 많이 알려진 따쟈시에(大闸蟹)는 양청호의 특산물로 전국으로 판매된다. 하지만 양청호의 자연산 따쟈시에의 양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대부분의 따쟈시에는 양청호 근처에서 양식으로 키워진다. 주로 황주(黄酒)와 함께 먹는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