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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Dec 16. 2020

뭐든 많이 받으면 단련이 되는 법인데 지적질만은 어째

<언덕 중간의 집>_가쿠타 미쓰요

엄마, 99.5점 받은 친구가 점수 보고 속상해서 울면서 뛰쳐나갔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는 아이에게 엄마가 바로 그런 아이였다고 말하지 못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몇 점 짜리 시험지를 흔들고 들어오든 아이를 웃으며 맞아주는 건 아니라는 말도. 


첼로와 작곡에 소질이 뛰어났던 동생이 음악을 아예 그만둔 이유를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전국 대회에서 2등을 한 동생에게 무섭게 지적질했던 엄마. 조금만 더 잘해 최고가 되기를 바라는 엄마의 사랑 표현이었겠지만, 동생은 결국 음악과 담을 쌓고 말았다. 이런 어이없는 일이 세상에는 꽤 많이 일어난다. 그것도 나를 사랑하고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이 나이가 되어도 지적질을 꽤 당한다. 소질 없는 것들을 해보겠다고 애를 쓰다 여기저기서 두들겨 맞는다. 알게 모르게 받은 모욕으로 상처가 꽤 깊어졌는지, 가끔은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리고 나면 쉽게 바스러져버린 나 자신이 싫어 우울해진다.


<언덕 중간의 집>_가쿠타 미쓰요


문득 몇 년 전에 읽은 가쿠타 미쓰요의 소설이 떠올랐다.  <언덕 중간의 집>은 8개월 된 젖먹이 아이를 욕조에 빠뜨려 살해한 미즈호의 공판에 관한 이야기다. 


남편이 결혼 전 사귀던 여자에게 연락해 아내가 육아에 서툴다는 이유로 상담을 빙자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걸 발견했을 때

자기는 다섯 잔 째 마시고 있으면서 350밀리 맥주 두 번째 캔을 꺼내는 걸 보고 "또 마셔?" 하는 남편을 볼 때, 그리고 마신 캔을 몰래 숨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친정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자랐으니 좋은 엄마가 되기 어렵겠지?' 하는 남편을 볼 때


미즈호는 어땠을까?


사랑하는 아이를 잘 키우기 바라는 마음에 상담까지 받아가며 아내에게 지적질했던 미즈호의 남편은 결국 아이를 잃었다.


원고로서 미즈호가 엄벌을 받기 원한다고 증언한 뒤, 마땅한 벌을 받고 나오기만 하면 이혼하지 않고 남은 생을 같이 살겠다는 남편. 그런 남편을 보며 사람들은 천사 같다고 했다.

상대를 깎아내리고 상처 입힘으로써 자신의 울타리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게 그의 사랑법이라면, 이런 '천사 같은' 남편과 남은 생을 사느니 차라리 무기징역을 택하겠다.

(미즈호의 죄에 대해 정당화할 생각은 전혀 없다. '천사 같은’ 남편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할 뿐.)


뭐든지 많이 받으면 단련이 되는 법인데, 이상하게 지적질이나 모욕은 오래 받아온 사람들이 상처를 더 잘 받는다. 가벼운 교통사고 후 겉은 멀쩡해 보여도 골병이 드는 것처럼, 말로 맞을 때마다 가슴에는 피멍이 든다. 


잘 바스러지는 자아로 남은 삶을 살아가려면, 본드를 발라 단단히 붙여야겠다. 학교에서 자신을 조롱하는 친구에게 "No, thank you.” 했다는 아이처럼, 누군가 무심코 던지는 모욕에 고맙다는 말로 태연하게 돌려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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