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대가로 돈을 받는 그녀
오늘은 그녀가 오는 날이다.
그녀는 오늘도 긴 생머리를 찰랑찰랑 흔들며 저 문을 열고 들어오겠지. 부드러운 밤색을 띠고 있는 그녀의 머릿결은 탐스럽다. 폭포처럼 떨어지는 그 머릿결 속에 손을 담그고 싶은 충동이 가끔 일어, 나는 그녀 곁에 너무 가까이는 가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향기가 분명 나를 끌어당길 것이다. 상쾌한 꽃 향기. 들판 가득 피어 있는 하얀 들꽃들이 밤새 머금고 있던 이슬을 모두 모아 만들었을 법한 싱그러운 그 향기. 역시 풋풋한 아름다움을 발산할 줄 아는 그녀. 향수가 아닌 향기를 입고 또 흘릴 줄 아는 여자. 아, 그게 바로 나의 그녀다.
초인종 소리.
현관문이 열리고...
드디어 그녀가 들어선다.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얼른 방으로 가서 숨는다. 가까이 다가가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오래도록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싶다. 하지만, 그건…할 수…없는… 일. 사랑은 아무리 감추려 해도 드러날 수밖에 없지만, 아직은 그녀에게 들키고 싶지 않다. 아직은...
그녀가 나를 찾아 방으로 들어선다.
고양이처럼 살짝 올라간 눈매는 그녀의 꼿꼿한 자존심을 보여 준다. 그 어떤 가난이나 역경도 절대로 굴복시키지 못할 그 짱짱한 존엄. 어쩌면 그녀의 그런 모습에 매료된 건지도 모른다. 그녀는 돈 때문에 지금 여기에 올 수밖에 없고, 나와 함께 하는 대가로 돈을 건네받을 테지만, 그녀의 눈에서 비굴함이나 비참함 따위는 절대 발견할 수 없다.
나는 잠시 그녀의 얼굴을 더 바라보기로 한다.
짙은 속눈썹이 그녀의 눈을 더 깊어 보이게 한다. 꼭 다문 입술. 그 단단한 입술이 열리면 흘러나올 그 목소리. 비음이 살짝 섞인 그녀의 목소리는 들어도 들어도 갈증이 난다. 침대에 누워 침대 맡에서 그녀가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소리, 책을 읽어 주는 소리,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하루 종일 누워 있고 싶다.
가슴이 미친 듯이 뛴다. 그녀가 나를 찾아오기 시작한 그날부터 얻은 병이다. 날뛰는 심장, 뜨거워지는 얼굴, 마냥 그녀 곁에 붙어 있고 싶다가도 마냥 달아나고 싶은 마음.
이것도 사랑일까.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은 빛의 속도로 지나간다. 벌써 잠자리에 들 시간. 내가 잠들고 나면, 그녀의 임무 끝. 그녀는 다시 그녀의 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샤워 먼저."
그냥 침대로 올라가서는 안된다고 그녀가 나를 욕실로 밀어 넣는다. 난 싫다고 발버둥 쳐 보았지만, 그녀를 거부할 수 없다. 그녀의 그 어떤 말도 거부할 수 있는 힘이 내겐 없다.
샤워를 하는 건지, 폭포 밑에 서 있던 건지…… 아득한 시간이 지나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몸에 타월 한 장을 걸치고 주저주저하며 욕실을 나온다. 그녀가 다가온다. 머리끝까지 달아오른다. 그녀가 내 손에서 타월을 뺏어들더니 내 몸 구석구석을 닦기 시작한다. 아, 그녀 앞에 난 무력한 몸뚱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채, 그렇게 서 있다. 그녀는 따뜻하고 보드라운 손으로 바디로션을 내 몸 구석구석 천천히 발라준다. 그녀의 느릿한, 하지만 섬세하고 우아한 손길을 나는 좋아한다
"이젠 침대로 가. 불은 끄는 게 좋겠지?"
그녀가 내 머릿결을 쓰다듬는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그녀가 내 볼에 살짝 키스한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아, 그대여, 나의 그대여!
아름답고 순결한 나의 그대여!
그대를 오래오래 기다리게 해야 하다니….
"우리 미규, 여섯 살이라고 했나? 누나만큼 크려면 떡국을 열네 번은 더 먹어야 하는구나."
아, 나는 다시 한번 무너진다. 잘 알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든 이 지독한 ‘현실’
그녀는 나보다 열네 살이 더 많다.
(여섯 살 미규가 베이비시터 누나를 사랑하게 된 이야기를 꾸며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