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주제에 무슨 캐슬(castle)?

"난 여기 살면 안 되는 거야?"

by 윤소희

“난 여기 살면 안 되는 거야?"

애꿎은 남편에게 소리 지르던 수영이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한다.

"치사해, 정말! 난 캐슬에 살 자격이 없다는 거야, 뭐야?”


팔다리를 걷어붙이고 마른 수건 뭉치로 화장실 바닥을 흥건히 적신 물을 빨아들이고 있던 진환은 수영을 보자 난감해진다. 갑자기 벌어진 사태를 수습하기에도 정신이 없는데, 일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하기는커녕 저렇게 울며 감정적으로 대처하니. 그런 수영을 볼 때마다 가슴이 짓눌리고 답답하다. 수영이 위로를 바라는 걸 알지만 진환은 수영을 위로하는 일이 언제나 힘들고 버겁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수영을 위로하는 것에 비하면 물 새는 화장실 바닥을 닦아내고, 수리공을 불러 수리를 맡기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캐슬.jpg 북경에 있는 아파트 '싱허완(星河湾)'


수영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그 이름도 유명한 ‘캐슬’이다. 앞뒤로 너저분한 수식어를 집어넣을 필요가 없는 ‘캐슬’. 이름만 들어도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품격을 말해줄 것 같은 ‘캐슬’. 멀리서 보아도 유럽의 멋들어진 고성들의 위용에 전혀 뒤지지 않는 바로 그 ‘캐슬’.


수영이 ‘캐슬’에 처음 꽂힌 건, 남편 진환의 사업이 부도나 결혼 생활 내내 부은 적금으로 겨우 장만한 작은 아파트 하나마저 빚잔치로 날리고, 눈칫밥을 먹으며 친정에 얹혀 지낼 때였다.

“나 어제 캐슬 안에 들어가 봤는데……. 완전 구준표 집이야."

구준표라면 신데렐라 류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재벌 2세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다. 전화통 붙들고 수다를 떨던 친구가 캐슬의 모델하우스에 들어가 본 소감을 얘기하자, 수영은 갈 곳 없어 방안에 죽치고 앉아 있던 진환의 소매를 끌었다. 어차피 들어가 보기만 하는 건 공짜이니 기분전환으로 가보자며 싫다는 진환의 팔에 팔짱까지 끼고 들어가 캐슬의 모델하우스를 돌아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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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 있는 아파트 '싱허완(星河湾)' 내부


과연 캐슬의 모델하우스는 굉장했다.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닦여 있는 대리석 바닥, 높은 천장에 휘황하게 달려 있는 샹들리에, 방마다 깔려 있는 보송보송하고 부드러운 카펫, 집 안을 가득 채운 클래식한 분위기의 고급스러운 수입 가구들.

캐슬의 모델하우스를 돌아본 후, 캐슬은 수영에게 꿈에 그리는 궁전이 되었다.


몇 년 후, 진환이 직장에 취직도 하고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자, 수영은 무조건 캐슬로 이사 가자고 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사기는커녕 전세도 아니고 월세로나 겨우 들어갈 수 있고, 그나마도 받은 월급의 거의 대부분을 월세로 들이부어야 했지만 수영은 막무가내였다. 사업 실패로 본의 아니게 수영을 고생시켰던 게 늘 미안했던 진환은 미친 짓이라 생각했지만, 딱 1년만 살기로 약속하고 무리한 계약을 했다.


드디어 새 집으로 이사 가던 날, 수영은 너무 들떠 한숨도 자지 못했다. 평민 여자가 갑자기 왕후로 간택이라도 된 듯 , 수영은 갑자기 몸과 마음이 붕붕 떠올라 하늘을 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쁨도 잠시.


“엄마, 근데 집이 왜 이렇게 추워?"

“글쎄…. 바닥이 대리석이고 천장이 이리 높으니 따뜻해지는데 시간이 걸리는 거겠지?"


하루 종일 이삿짐을 날라 어느 정도 부려놓고 나서야, 수영은 집 안이 몹시 춥다는 걸 깨달았다. 대리석이나 유리 같은 바닥과 벽의 재질이나, 천장의 높이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코끝이 너무 시렸다. 보일러 고장이었다. 집주인이 무슨 사정에서인지 오래도록 비워두고 관리도 소홀히 했다는 것은 관리실 직원이 흘리듯 던지고 간 말을 듣고야 알았다. 해는 졌고, 수영과 진환 그리고 두 아이들은 여러 겹의 옷을 잔뜩 껴입고 이불을 돌돌 만 채 넷이 한 침대에서 오들오들 떨면서 캐슬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단 1년만이라도 캐슬에서 왕후 마마처럼 우아하고 고상하게 살아보겠다고 들떠 있던 수영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집주인은 연락을 잘 받지 않았고, 시세보다 한참 낮게 월세 준 것을 들먹이며 보일러 수리도 잔뜩 늑장을 부렸다. 며칠 만에 보일러 수리공이 나타났지만, 보일러 기기가 노후된 데다 관리를 너무 오랫동안 안 해서 수리를 일부 한다 해도 효과가 많이 떨어질 거라고 한다. 역시 수리 후에도 따뜻하고 포근한 실내 온도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사내 애들에게는 약간 서늘한 기온이 훨씬 좋다며 수영은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캐슬은 그 후로도 수영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빌트 인'이라 수영이 가져온 낡은 가구들이나 가전제품에 비해 빛나 보였던 냉장고가 갑자기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냉장실에 넣어 두었던 과일이며 야채에 모두 하얀 서리처럼 얼음꽃이 피었다. 겨우 연락이 된 집주인은 멀쩡한 냉장고가 왜 갑자기 고장 나냐며, 수영이 사용법을 잘 몰라 그런 게 아니냐며 의심부터 했다. 냉장고 사용법이라니. 빌트 인 냉장고는 냉장고가 아니라, ‘금장고’라도 된다는 건가. 냉장고 수리를 위해 냉장고를 2,3주 가져가야 한다는 말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수영은 그날그날 먹을 것들을 매일 장을 보며 냉장고 없는 긴 시간을 버텨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수영이 무너져 내린 건 냉장고가 채 돌아오기도 전이었다.


“아이씨! 이게 뭐야? 다 젖었잖아!”


안방으로 들어서자 바닥의 카펫이 흥건히 젖어 있다. 안방에 딸린 화장실 바닥은 이미 홍수가 나 있다. 문제의 진원지가 변기인지, 샤워부스인지, 욕조인지 분별해볼 틈도 없이 넘쳐흐르는 물부터 닦아야 했다. 이사 후부터 코를 ‘킁킁’ 거리는 막내아들을 병원에 데려가니 ‘알레르기성 비염’이며, 원인이 집먼지와 진드기라고 한 게 엊그제다. 집먼지, 진드기가 바글바글한 카펫이 이제는 화장실에서 흘러나온 더러운 물로 흥건히 젖었으니, 곰팡이까지 피게 생겼다.


열심히 수건 뭉치로 물을 닦아 짜내고 있는 진환 옆에서 수영은 그대로 축축한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무슨 캐슬이 이래? 왕후는커녕 완전 시녀 생활 아냐!"

문제를 해결해야 할 시점에 주저앉아 울고 있는 수영을 보자 진환은 한숨이 나왔지만 입을 다물었다. 1년 간의 이 미친 쇼가 다 수영을 위한 것이었다는 걸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머뭇머뭇 다가오던 다섯 살배기 막내가 수영에게 말을 건다.

“엄마, 왜 울어?"

“그냥. 좀 힘들어서…."

수영이 서럽게 울던 울음을 추스르고 애써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엄마, 근데 '1동 주제’가 뭐야?"

“뭐? 글쎄."

“쪼꼬만 1동 주제에 무슨 캐슬이냐고…. 놀이터에서 어떤 애가 그러던데…."


캐슬 안에서도 1동은 가장 작은 평수로 차별을 받고 있었다. 어떻게 캐슬이 이럴 수 있냐고 수영은 불평하고 있지만, 본래 캐슬 (castle)이란 그런 곳이 아니었을까?

화장실조차 제대로 없어 작은 문으로 대소변을 밖으로 버리는 곳, 지하감옥이나 비밀 통로가 있는 춥고 음침한 곳, 절대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이 엄연히 존재하던 곳, 외부인과 이방인의 침입을 철저하게 봉쇄하던 곳.


바로 그런 곳……. 캐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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