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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an 12. 2021

난 훔치지 않았다고!

CCTV로 무죄 증명하기

‘삑-삑-삑-빽’ 


입구에서 쭈뼛쭈뼛 머뭇거리는 여자와 그 여자 손을 붙들고 잡아당기는 남자. 그들이 들어서는데 갑자기 입구에서 빨간빛이 깜빡거리며 경고음이 울린다. 옷가게 점원이 달려와 문제의 남자 행색을 살펴보니 멀쩡하게 양복을 입고 있다. 그의 손에 물건이 담긴 쇼핑백이 들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뭐라고 뭐라고 주의를 준다. 남자는 알았다고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가게 안을 돌아다닌다. 여자는 남자에게서 한두 발짝 떨어진 채 불안하고 초조한 기색으로 주위를 계속 살핀다. 


“요즘 애들이 몸에 끼는 게 싫다고 청바지는 안 입지?” 

“응, 헐렁한 것만 입어.” 

소위 말하는 ‘추리닝’, 편한 운동복 스타일의 아이들 바지 두 벌을 손에 들고 계산대로 향한다. 계산을 하는 내내 남자는 아까부터 들고 있던 쇼핑백을 부스럭거리며 안에 있는 물건을 주물럭거린다. 옆에서 여자는 내내 불안한 듯한 시선으로 계산대 너머의 물건들을 이리저리 바쁘게 시선을 움직여 무언가를 찾고 있다.  


“실례하지만… 이것 좀 도와주시죠.” 

잠시 점원이 남자의 얼굴을 몇 초간 뚫어지듯 쏘아보다, 대답을 한다. 

“죄송하지만, 저희가 해드릴 수는 없어요. 모양이 달라요.”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여자는 안도감과 실망감이 얽힌 묘한 표정이 되었다.  


“저 옆에도 가 보자.” 

어깨가 조금 처진 채 걷고 있는 여자의 어깨에 살짝 손을 얹으며 남자가 말한다.  

삑삑 소리를 뒤로 하며 바로 계산대 앞으로 향한다. 남자는 괜히 필요하지도 않은 양말 세트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계산을 하며 역시나 아까부터 들고 있던 쇼핑백을 만지작거린다. 

“여긴 모양이 똑같다.” 

옆에서 여자가 조금 희망이 생긴 듯 남자를 툭 친다. 

“실례하지만… 이것 좀 제거해 주시죠.” 

무뚝뚝한 얼굴로 남자와 여자를 번갈아 바라보던 점원은 툭 잘라 말한다. 

“안 돼요. 다른 회사 제품이잖아요.” 


“들어갈 때는 울리더니, 나갈 때는 소리가 안 나네.” 

옷가게 출입구를 지날 때마다 잔뜩 긴장한 채 어깨를 움츠리던 여자가 남자에게 힘없이 말을 건넨다. 

“이제 어떡하지? 그냥 버릴까?” 

잔뜩 풀이 죽은 여자의 목소리가 신경 쓰였는지, 남자가 씩씩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 브랜드 매장 본 적 있어? 그럼 내일 외출할 일 있으니 거기 가 볼까?” 


다음날 점심때쯤 여자가 보았다던 그 점포가 있는 건물에 도착했다. 하지만, 1층부터 4층까지 건물 구석구석을 살피며 돌아다녀도 그 브랜드의 매장은 없다.  

“당신, 진짜 여기가 맞아?” 

못 미덥다는 듯한 표정으로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눈에 짜증이 서려 있다. 

“아이 참, 당신도 같이 두어 번 왔었잖아. 정말 생각 안 나?” 

훔치지도 않은 물건 때문에 도둑이 된 심정으로 불안한 며칠을 살고 있는데 이제는 치매 환자 취급이라니… 취조당하는 듯한 분위기에 억울해진 여자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건물을 샅샅이 살피며 두 바퀴쯤 돌고 나자 여자가 기운 빠진 목소리로 말한다. 

“이제 그만 가자.” 


스마트 폰으로 버튼 몇 개 눌러 가볍게 옷 한 벌을 주문한 게 화근이었다. 마침 주문한 옷이 도착해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어 입어 보는데 옷이 맞춤한 듯 잘 맞았다. 기분이 좋아진 여자가 가격표를 떼려고 옷 속을 살피는데,  뭔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옷을 뒤집어 살펴보니 도난방지 태그가 그대로 붙어 있다. 잡아당겨도 보고 두드려도 보고… 동그란 반쪽자리 플라스틱 공 두 개가 옷을 살짝 물고 있는 형태인데, 옷을 아주 조금 물고 있지만, 강제로 뜯어내면 옷에 구멍이 생겨 입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판매자에게 문자로 사진을 보내고 상황을 설명하자, “가까운 점포로 가서 떼어 달라 하세요.”라는 답만 돌아왔다. 여자는 “내가 점포에 나갈 것 같으면 인터넷으로 옷을 샀겠냐, 이 바보야!” 하고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빠르게 도난방지 태그 빼는 법을 검색하고 비장한 각오로 망치를 손에 들었다. 가장 튼튼해 보이는 화장실 바닥에 옷을 내려놓고 도난방지 태그를 향해 힘껏 망치를 내리쳤다. 10번은 내리쳤을 텐데 도난방지 태그가 깨지기는커녕 서로가 더욱 가깝게 밀착해 그 속에 낀 옷이 상할까 염려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해서 결국 내키지 않는 '점포 순례'가 시작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기 한 번 가 보자.” 

너무도 실망하는 여자를 위해 남편이 점포 검색을 시작했고, 3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매장이 하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여전히 매장 입구에 들어설 때 여자는 잔뜩 긴장했다. 어쩐 일인지 이곳 매장에서는 삑삑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뭐야, 남의 매장에서는 삑삑 잘 울리더니, 정작 자기 매장에서는 울리지도 않는 거야?” 

여자는 자기 소유의 점포도 아닌데, 뭔지 모르게 허탈했다. 


지난 세 번 보다는 조금 당당하게 계산대 앞에 섰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역시 점원의 레이저 같은 시선으로 스캐닝을 한 차례 당해야 했고, 구매했다는 증명 서류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으며, 점원은 매니저를 부르고 여러 가지를 확인했다. 여자는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난 훔치지 않았다고!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요즘은 어디나 CCTV가 있지 않나? CCTV 기록을 확인해 보라고 해! 그런데 어디 있는 CCTV? ooo 브랜드 매장 모두의 CCTV? 언제 기록? 지금 이전의 모든 기록? 여자는 점점 허탈해졌다. 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때 그곳의 CCTV를 찾아 보여주면 된다지만, 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떻게 보여주고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 걸까…CCTV에 기록이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과연 내 무죄를 증명해 줄 수 있을까? 여자의 머릿속이 갑자기 하얘지며 모든 것이 아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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