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희 Feb 27. 2021

담배 못 끊는 어느 목사의 항변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 매거진 내 모든 글은 '손바닥만 한 소설' 즉 콩트입니다. 실화가 아닌 허구입니다.)


대낮인데도 커튼을 친 실내에는 쾨쾨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어둠 가운데 ‘반짝’하며 붉은빛이 깜빡거린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에베소서 5:8)


빛의 자녀는 어둠 가운데 있어도 빛이 나는 법, 굳이 훤한 태양 아래 있으라는 법은 없지, 암. 모든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주는 고결한 빛, 세상에 이런 빛이 되라고 하신 게지, 흐흠.


모래가 담긴 조그만 향로 위에 엊그제 산 솔잎 내 나는 향을 두 개 꽂고 불을 붙인다. 금세 뽀얀 연기가 방 안 가득 은은한 향기를 풍겨낸다. 보통 사찰에 올라갈 때 맡을 수 있는, 마음을 차분히 해 주는 향이다.


향은 사람을 도취시켜 영혼이 몸에서 분리되는 신비적 경험을 유도한다. 태고부터 향이 제사에 빠지지 않고 사용된 이유가 이 때문이겠지. 향의 연기는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을 연결한다. 향이 불교신자의 전유물이라고 누가 그런 무식한 소리를 하지? 가톨릭, 동방정교, 콥트교 등 그리스도교에서 미사시에 향을 피우며 회중과 장소를 성스럽게 구별해, 신이 내려와 신의 영이 회중 위에 오래 머무르도록 해 왔는데……. 요즘 성도들은 공부를 너무 안 해, 그게 문제야.


“주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 임재하실 때
예배가 회복되고 기적은 일어나네”
-찬양 ‘주의 나라가 임하고’ 중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찬양 소리.

천국은 죽은 자들의 몫이 아니야, 주님은 우리가 바로 이곳에서 주의 나라, 천국을 맛보며 살길 바라시지. 법으로 금지된 코카인, 모르핀, 키닌이나 아트로핀 같은 마약을 굳이 사용하지 않고도 구조가 비슷한 화학물질로 천국의 환락을 경험할 수 있는데, 이를 멀리하라고 성경 어디에 쓰여 있던가?


하얀 연기를 흐벅지게 들이마시며 길게 한숨을 내뿜는다. 담배만큼 사랑과 미움을, 찬양과 저주를 한 몸에 받는 것도 세상에 다시없을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 자기 한 몸 불살라 남을 이롭게 하는 예수님과 닮은 이 담배를 난 도저히 멀리 할 수 없다. 아니 사랑할 수밖에 없다.


오, 예수님! 부디 이곳에 임재하소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의 말씀대로 열심히 선교사를 파송해 한국이 미국에 이어 세계 제2위의 선교 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그 미국을 두 배 이상 압도한 건 국민 1인당 피우는 연간 담배 개수! 한국인 한 사람이 연간 4,153개비를 피워 세계 제1위를 달성했다. 2위인 일본(2,739개비)과 비교해도 거의 두 배에 해당한다.* 이쯤 되면 목에 힘을 줘도 되지 않을까, 흐흐.


담배가 폐암 원인의 85%라느니, 담배가 독극물 보다 나쁘다느니 하는 것은 사탄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사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진리에 이르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하는 법이니까.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로마서 13:1-2


국가가 조직폭력배가 아닌 다음에야, 국민들한테 독극물보다 나쁜 담배를 팔도록 허용하고, 그 세금으로 한 해 수조 원씩 걷어들일 수 있겠는가? 국가처럼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기 위해 나라가 하는 일에 아무것도 묻지 말고 순종해야지, 물론!


가끔 무식한 성도 중에 목사가 어떻게 담배를 피우냐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게 눈이 어두워 제 갈 길을 알지 못해 헤매는 양들을 올바를 길로 인도하라고 목사를 목자로 세우신 게지. 그런 헛소리를 하는 성도들은 백이면 백, 성경을 한 번도 통독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다. 성경을 한 번이라도 통독해 봤다면, 성경에 담배의 ‘담’ 자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 텐데 말이다.


더구나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들의 입장에서 교회의 사회참여를 강조한 제3세계 신학, 해방 신학의 지지자로서 목사의 금연 요구는 개소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의 죄를 용서해주실 뿐 아니라 몸의 질병과 병든 이 세상까지 치유하신다.”
-존 웨슬리


영국 종교개혁자 존 웨슬리의 말을 다시 한번 묵상한다. 백 번 양보해서, 흡연이 죄라고 하고, 건강에도 해롭다 해도, 매일 회개하고 기도하는 내 죄를 주님이 용서해 주시고, 내 몸의 모든 질병을 낫게 해주지 않겠는가?


담배꽁초를 변기에 집어넣고 재빨리 물을 내리고 향 하나를 더 피운 뒤 기도실로 들어간다. 무지한 양들을 위해 오늘도 내 몸을 불살라 기도하리라.



(*97년 USA Today  유러 모니터 통계 인용)

이전 06화 그녀의 얼굴에 똥칠을 했다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