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w me one last kiss!
(이 매거진 내 모든 글은 '손바닥만 한 소설' 즉 콩트입니다. 실화가 아닌 허구입니다.)
“마지막으로 키스한 게 언제냐고? 치, 너무 20대 같은 질문 아니야?”
“아니, 20대 땐 언제 첫 키스를 했냐고 질문했었지.”
“뭐야, 40대에 죽는 것도 아닌데 마지막 키스라니…….”
“그러지 말고 언제 마지막으로 키스했는지 빨리 말해 봐.”
“누구랑 했는지도 말해야 하는 거야?”
남사스럽다는 듯 처음엔 소곤소곤하던 주고받던 말들이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마침내 웃음바다가 되었다.
대학교 때 단짝으로 늘 함께 몰려다녔던 네 명의 여학생들이 어느덧 나이 마흔을 넘긴 중년이 되어 10여 년만에 모인 자리. 늘 짓궂었던 김이 젊은 시절 기분을 되살려 보자며 ‘진실게임’을 제안했다.
“이제 뱃속에 능구렁이 몇 마리 씩 들어앉았을 텐데, 진실이 나오겠냐?”
검은색 바지 정장을 입고 있는 박이 시니컬한 표정으로 물었다. 반쯤 남은 와인 잔을 단숨에 비우더니, 보드카를 시킨다. 20대 후반 함께 일하던 여자 동료와 불 같은 사랑에 빠져 몇 년을 보낸 이후, 박은 자신이 남자를 사랑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연인과의 사랑을 이뤄보고자 함께 프랑스로 유학도 떠났지만, 한국에 두고 온 부모님을 매몰차게 외면할 수 없던 박이다. 독한 마음으로 30대 초반에 연인과 헤어진 뒤, 독신으로 살고 있다. 그 후 누군가에게 자기 입술을 허락해 본 일 없는 박은 연인과의 ‘마지막 키스’를 떠올리니 가슴을 후벼 파는 고통이 느껴졌다.
“오늘 아침 공항에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대니얼이랑 정신없이 키스하고 있는데 글쎄, 택시 기사 아저씨 하는 말, ‘코리아 택시 키스 노, 노!’ 넘 웃기지 않니?”
30대 초반에 결혼했다가 1년도 안 되어 이혼한 후 독신을 선언한 최가 입을 열었다. 인조 속눈썹까지 붙인 짙은 화장에 몸에 꼭 붙는 원피스로 40대라고 믿기지 않는 몸매를 과시하는 최. 이는 최와 자신을 번갈아 보며 역시 애를 안 낳아 본 몸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꽉 막힌 한국 남자들 역시 안 돼.”
최는 잘 손질된 붉은 손톱들이 반짝이는 우아한 손으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입으로 가져갔다.
“열다섯 살이나 어리단다.”
김이 최의 연애담이라면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말을 덧붙이자, 놀람과 감탄이 이어지며 술자리가 한동안 술렁거렸다.
“그럼 제대로 된 키스였겠네.”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던 이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다행히 모두 떠들어대느라 이의 중얼거림을 듣지 못했다.
언젠가 한바탕 웃어젖히는 토크쇼에서 한 개그우먼이 ‘마지막 키스는 언제?’라는 질문을 받고 당황하던 게 문득 기억났다. 본래 남을 웃기는 게 본업이니 당황하는 모습을 과장하며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는데, 이는 질문을 받자마자 클로즈 업 된 그 개그우먼의 얼굴에서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당황’과 ‘슬픔’을 보았다. 이혼이나 사별로 남편을 떠나보낸 것도 아니고, 매일매일 얼굴을 맞대고 사는 삶에서 그런 질문을 받고 당황해야 한다는 건 잔인하고 슬픈 일이다.
“그럼 질문을 꺼낸 너는 도대체 언제야?”
담배의 마지막 한 모금을 깊이 내뿜으며 최가 물었다.
“난 어젯밤.”
달뜬 얼굴을 하고 있는 김을 보니, 예사로운 사연이 아닐 거라고 이는 생각했다.
“남편이 아니구나.”
알 만하다는 얼굴로 최가 물었다.
“당연 아니지. 남편이랑 재미없게 무슨 키스? 남편의 베스트 프렌드!”
무용담을 얘기하듯 의기양양한 얼굴로 김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하루는 접촉 사고가 나 처리를 해야 하는데, 출장이다 야근이다 늘 바쁜 남편이 바쁘니 알아서 하라고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발을 동동 구르던 김은 망설이다가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로 남편과 함께 가끔 집에 와서 술을 마셨던 J에게 전화를 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전화를 했는데, 흔쾌히 달려와 도와준 J. 자기 사업을 하니 낮에도 시간을 맘대로 여유 있게 조절할 수 있는 J와 김은 가끔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어젯밤 J와 낚시 가니 많이 늦을 거란 남편의 전화를 끊고 김은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떨리는 손으로 J에게 전화를 걸어와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지체 없이 차를 몰고 달려와준 J. 김은 J의 차 안에서 영화에서처럼 진한 키스를 나눴다.
“J랑 잤어. 오랜만에 낚시 다녀와 피곤하다는 남편 얼굴을 보고 아주 활짝 웃어줬지. 통쾌하더라.”
큰 소리로 웃는 김의 얼굴이 어딘가 가면처럼 부자연스럽다고 이는 생각했다.
각자의 진실 따위에 관심이 있던 게 아니었던 거다, 김은. 자신의 답답한 속을 그저 털어놓고 싶었던 거지. 김의 대답을 끝으로 이와 박에게는 질문이 이어지지 않고 진실게임은 끝나 버렸다.
까르르 웃으며 함께 캠퍼스를 누비기도 하고, 자취하는 박의 집에 모여 밤새 술을 마시며 많은 것들을 함께 고민했던 네 사람. 강산이 두 번쯤 변한다는 세월이 각각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몰아가 이제 네 사람의 삶 사이사이에 깊은 강물이 흐르 듯 서로가 아득하다.
친구들 중 가장 일찍 결혼해 이미 결혼 14년 차 주부인 이는 그날 이후, 매일매일 가슴이 두근거린다. 남편이 퇴근하기 전 양치질도 하고 향수도 뿌려보고 남편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지만 번번이 실패. 섹스 같은 건 한 달에 한두 번이라도 관계없지만, 평생 다시는 키스를 할 수 없다는 건 어쩐지 방부제 때문에 썩지 않고 있다 해도 이미 무덤에 갇힌 시체가 된 듯 입술이 푸석거린다.
고민하던 이는 메모 한 장을 써 출근하는 남편의 양복 주머니에 넣었다. 이는 하루 종일 사랑 고백을 거절당한 소녀처럼 왼쪽 가슴이 아파오다, 또 갑자기 쿵쾅쿵쾅 가슴이 뛰기도 하다, 혼자 스르르 눈을 감기도 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소녀 때의 설렘과 흥분이 되살아났다.
자신의 양복 주머니에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게 바쁘게 일하는 이의 남편. 주머니 안 메모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Blow Me One Last Kiss*"
*Pink의 노래 제목 <Blow Me (One Last Ki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