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오후 3시에 찾아온다

그제야 눈에 보이는 존재들

by 윤소희

(이 매거진 내 모든 글은 '손바닥만 한 소설' 즉 콩트입니다. 실화가 아닌 허구입니다.)


두툼한 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고 고개를 들어 보니 사방이 어두컴컴하다. 책에 몰두하느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지 못했다. 벌써 밤이 됐나? 읽고 있던 책이 워낙 두꺼웠으니 밤이 되었다 해도 이상한 일을 아니었으나, 학교에 갔던 아이들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내팽개쳐 두었던 휴대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막 오후 3시가 되었다. 말도 안 돼, 3시밖에 안 되었는데 왜 이렇게 어둡지?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걷었다. 벌써 어스름이 짙다. 혹시 개기일식인가? 대낮에 갑자기 암흑이 찾아오는 개기일식을 딱 한 번 경험해 본 적 있다. 그때처럼 캄캄해진 게 아님에도 우선은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뉴스 검색을 했다. 어디에도 개기일식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제야 공기 오염 정도를 알려 주는 ‘대기질’ 관련 앱을 열었다. 평소에 볼 수 없던 어머어마한 수치가 눈에 띄었다. 여러 수치를 종합해 보니 황사였다. 모래먼지가 몰려오고 있다.


창문을 꼼꼼히 닫고 집안의 불을 모두 켰다. 오후 3시밖에 안 되었는데 어둠이라니.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며칠 전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온 지 2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내가 사는 동을 청소하는 아주머니의 얼굴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1층 로비에 들어설 때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언뜻 작게 웅크리고 청소하는 뒷모습이나 옆모습을 본 게 전부였다. 키가 작고 땅땅한 체격이라는 것만 기억할 뿐 자세히 눈여겨보지 않았다.


며칠 전 외출했다 돌아오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다 소리를 지를 뻔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 그 아주머니가 우리 집 앞에 떡하니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얼른 시선을 피해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아주머니가 문 앞을 막고 서서 전혀 피해줄 기색이 없다. 잠시 망설이다 아주머니와 시선을 마주쳤다. 순간 처음 발견했을 때 소리를 지를 뻔한 이유를 알았다. 그 아주머니 눈에 당연히 있어야 할 검은 눈동자가 양쪽 다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시선을 마주쳤다고 생각했지만 시선을 마주친 건 아니었던 셈이다. 아주머니가 내쪽으로 손을 뻗었다. 그 공허한 눈길에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서는데, 아주머니 손에는 쪽지가 들려 있다.


“모든 일이 곧 이렇게 시작되지.”


책 속에서나 읽었던, 그래서 상상만 해오던 여자 예언자의 목소리. 분명히 여자 목소리임에도 남성적이고 단단한 데가 있다. 게다가 마치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듯 어딘가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쪽지를 받아 들자, 아주머니는 빗자루를 집어 들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받아 든 쪽지에 적혀 있던 문장이 이제야 기억난 것이다.


“어둠은 오후 3시에 찾아온다. 그리고 그건 이 모든 일의 시작이다.”


직감은 무슨 일이 곧 일어날 거라 말해주고 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일인지 짐작도 할 수 없어 안절부절못하며 집안을 왔다 갔다 하며 창밖을 수시로 내다볼 뿐이다. 바깥은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깨달은 건 저녁이 다 되어서였다. 막내 아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두 아이 모두 방과 후 수업이 있어 늦게 출발하는 스쿨버스를 보통 타는데, 스쿨버스 기사의 말을 들어보니 막내 아이가 오늘은 방과 후 수업 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는 것이다.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는 걸 보았다는 수위 아저씨의 증언이 있었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아이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 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반쯤 정신이 나간 나는 우리 동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를 찾아내라고 소리를 질렀으나, 그 아주머니가 그날 사표를 내고 일찍 퇴근했다는 소식만 전해 들었다.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수색은 진전이 없다. 자꾸 쪽지를 건네받은 날에 대해 묻는데, 아무리 대답해도 경찰은 내 말을 못 믿겠다는 표정이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황사. 열흘 뒤 다시 짙은 황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둠은 오후 3시에 찾아왔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 어린아이 하나가 더 사라졌고, 그제야 아파트 내 아이를 가진 모든 집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제야 사람들은 동마다 청소해 주는 아주머니의 존재에 대해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먼지보다 미미해 있는 줄도 눈치채지 못했던 존재에 대해. 그제야 둘러보고, 기억하고, 그리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어둠은 오후 3시에 찾아온다' - 주디 리브스 <365일 작가 연습> 중 4/20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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