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수명을 하루살이의 수명과 바꿔야 한다니

지구인의 사랑은 마약인가

by 윤소희

이 별에 온 지도 이제 얼마 후면 50년. 우리 별에서 50년은 보통 ‘눈 깜짝할 사이’라고 불린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별에서 지구까지의 거리가 50만 광년인데, 50년쯤이야 눈 깜짝할 사이나 되겠는가. 물론 지구까지 오는 데, 50만 년인 걸린 건 아니었다. 빛처럼 느리게 날아서야 어디 다른 별을 찾아 여행할 꿈이나 꿀 수 있겠는가.


‘눈 깜짝할 사이’ 만큼 짧은 시간을 보낸 지구에서 그 짧은 시간을 돌아보며 할 이야기가 많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야말로 잠깐 머물다 떠날 것이고, 더 멀리 멋진 별을 찾아가는 길에 잠시 들른 거였다. 그런데 이 별을 떠날 시간이 다가오자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곳에 머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고 싶어 안달하는 모습을 우리 별의 다른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진 않다. 가끔 그런 증상을 보인 자가 그동안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극소수였고, 그나마도 정상이 아닌 부류가 많아 나 역시도 그런 자들을 맘껏 조롱하곤 했다.


그랬던 내가 지구에 ‘미련’을 두고 있다. 어떻게든 지금 삶의 시간을 연장하고 싶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다시 다른 삶을 입고라도 이곳에 머물고 싶다. 지구는 사실 우리 별에 비하면 작고 초라하다. 더구나 사람들의 무분별한 개발로 점점 못쓰게 되어 가고 있어 수명도 그리 길지 않다는 분석 자료도 보았다. 좁은 별에 바글바글한 인간들, 그중에는 짜증 나는 인간들도 꽤 많아 단 번에 폭파시켜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도 솔직히 있다. 그런데 나는 왜 이 별, 지구에 미련을 갖게 된 걸까.


나는 이 별에 사는 인간들이 너도나도 노래를 부르는 ‘사랑’에 중독되고 말았다. 다른 모든 걸 포기하고라도 지키려고 하는 사랑에 매료된 것이다. 나도 사랑이란 걸 해보고 싶어 인간인 척하고 한 인간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내 유전자를 가진 두 생명체야 내가 이곳을 떠날 때 함께 데리고 간다면 우리 별에서도 특별한 대접을 해주며 잘 키울 것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의 생부인 남자는 사정이 다르다. 우리 종족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순수 지구인인 남자를 우리 별에 데려가는 것은 금기 사항이다. 그걸 어기면 나뿐 아니라 내 가족들까지 모두 몰살당하게 된다. 아주 엄격한 규정이고, 지금까지 그걸 어긴 자는 없었다.


대신 우리 별로 돌아가는 걸 포기한 자들은 그동안 몇 있었다. 내가 직접 만난 자는 없었지만, 역사에 남아 있는 이야기로 전해 들은 경우는 있다. 이상하게도 그들이 미련을 둔 곳 중에는 지구가 가장 많았고, 사실 이번 여행지로 지구를 택한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도대체 어떤 별이길래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르는지 궁금했던 것이다. 우리 별로 돌아가지 않는 건 자살 행위다. 왜냐하면 내 수명을 ‘눈 깜짝할 사이’라는 찰나에 가두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구인의 수명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긴 내 수명을 지구인의 수명과 바꾸다니. 마치 지구인이 자기 수명을 하루살이의 수명과 바꾸겠다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 엄청나게 어리석고 미친 짓을 지금 고민하고 있다. 남은 내 삶과, 다음 여행지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 이 모든 걸 포기하고 지구인과의 찰나의 사랑을 붙들겠다니. 사랑은 분명 지구인들이 즐기다 망하는 마약과 같이 요상한 것임에 틀림없다.


이제 3분 남았다. 우리 별로 돌아갈 것인지 이대로 지구인으로 남을 것인지 선택해야 할 결정의 순간이.

눈을 감는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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