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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ug 16. 2021

휩쓸려가는 대신 잠시 멈추고...

꿈속에서는 내가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이었다

이건 분명 꿈이야, 하고 인지한 순간 눈앞에는 어김없이 엘리베이터가 나타난다. 이번에도 틀림없다. 엘리베이터 문은 모두 3개. 맨 왼쪽 엘리베이터 문이 가장 먼저 열렸다. 남편은 늘 그렇듯 망설임도 상의도 없이, 문이 열리자마자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러자 곁에 서 있던 다른 이들도 우르르 그를 따라 탔다. 사실 이상할 것 없는 풍경이다. 가장 먼저 열린 엘리베이터에 우르르 올라타는 일 따위. 하지만 나는 망설였다. 이게 꿈이 맞다면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마자 문과 벽이 사라지고 끝없이 추락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일단 그들이 가는 걸 지켜보기로 했다. 평소 나답지 않은 모습이지만, 어쩐지 멈추고 싶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혼자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엘리베이터에 남았다. (그 뒷 이야기는 다음날 아침 식사 자리에서 그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었다.) 갑자기 끝도 없이 떨어지는 엘리베이터. 전형적으로 내 꿈에 등장하는 추락 모티브다. 추락하던 와중에 남편은 오른손으로 간신히 난간 같은 걸 붙잡았다. 그는 왼손으로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꺼냈다.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하기 위해. 하지만 어두워서 페이스 아이디도 실행되지 않았고, 그의 패턴 아이디는 난간을 잡고 있는 오른손의 도움 없이는 실행할 수 없었다. (전화가 걸렸다 한들 누구한테 걸어 어디에 있는 엘리베이터라고 설명해야 할까.)


우르르 내렸던 다른 사람들이 남은 엘리베이터 두 대에 나눠 탈 때까지도 나는 엘리베이터에 오르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평소처럼 휩쓸려 가지 않고 ‘선택’이란 걸 해보고 싶었다. 세 개의 엘리베이터 문이 모두 닫혀버린 후, 비상구를 찾기 시작했다. 분명 계단이 있을 것이다. 마침내 찾았다. 몹시 어두웠지만, 녹색의 비상구 불빛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는 계단. 웨일스나 오스트리아 등 유럽 여행 때 첨탑을 오르기 위해 걸었던 좁고 가파른 나선형 계단이 끝없이 이어졌다.  


계단을 뱅글뱅글 돌며 끝없이 올라갔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어지러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다. 이제 더 이상은 못 올라가겠다고 포기하려는 찰나, 빛이 보였다. 마침내 계단 끝이 가까워진 것이다. 머리를 밖으로 내놓자 탁 트인 하늘이 보인다. 드디어 빌딩 밖으로 나온 것이다. 옥상은 텅 비어 있었다.  


계단 옆에 세 개의 엘리베이터 문이 보였지만 셋 다 굳게 닫혀 있다. 엘리베이터 위 전광판 숫자가 엄청난 속도로 바뀌고 있다. 찰나에 읽어냈을 때 각각 -365, -254, -450. 하지만 금세 더 낮아졌다. 엘리베이터를 나눠 탔던 무리의 사람들은 끝없는 추락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잠시 남편이 걱정되었지만, 합리적인 사람이니 어떻게든 살아올 것이다. (손을 놓치기 직전 내가 깨웠다고…) 


꿈속에서는 내가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이었다.* 아니 유일하게 도착한 사람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추락 중이다. 잠시 멈추었을 뿐인데, 운명이 바뀌었다. 휩쓸려 가는 대신 했던 나만의 ‘선택’이 나를 살렸다. 그리고 선택이 운명을 바꾸는 일은 꿈속에서만 일어나는 건 아닐 것이다. 


꼭대기에서 바라본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주디 리브스 <365일 작가 연습> 8/8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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