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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ug 23. 2021

함께 울고 웃으며 '우왕좌왕' 하는 거, 그게 사랑이지

<내 맘대로 베란다 원예> - 이토 세이코

조그만 마당이나 텃밭이 있어, 좋아하는 나무나 꽃을 심고 유기농 채소를 직접 키워 식탁에 올리는 삶. 부럽지만 도심의 아파트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대신 이것저것 화분을 들이거나 작은 화분에 씨앗을 심어 키우는 일을 반복했다. 하지만 오레가노와 민트, 로즈메리를 잃었고, 씨앗 때부터 지켜보았던 브로콜리와 수박, 토마토와 헤어졌다. 엄청난 생명력으로 거실 전체를 푸르게 하며 쑥쑥 자랐던 스킨답서스마저 코로나로 8개월간 집을 비웠을 때 모두 죽어버렸다. 작년 말 이사할 때 사들였던 나무들은 배송 과정에서 얼었다 녹으면서 도착한 다음날 이파리들이 모두 갈색이 되며 우수수 떨어졌다. 결과만 놓고 이야기하는 세상의 화법에 따르자면, 원예에 있어서 나는 '루저'다. 죽어나간 화분의 개수를 세며, 다시는 식물을 키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오레가노와 브로콜리


'식물을 죽이지 않고 잘 키울 수 있는 묘안' 같은 걸 얻을 수 있을까 해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베란다 원예 경력 10년, 자칭 ‘베란더*’의 책이니 분명 좋은 팁을 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오히려 그 때문에 다시 식물을 키워볼 마음이 생겼다. 


<내 맘대로 베란다 원예> - 이토 세이코


"도시의 비좁은 하늘 아래, 우리 베란더는 언제나 필사적으로 식물을 돌보고 또 시들게 해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몇 번이고 지치지 않고 꽃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너무 아쉬워할 것 없다고 말하고 싶다. 지는 것 또한 식물 생명의 한 주기니까.  
원예는 식물을 지배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시들어 버린 식물에 감사를 바친다  
손 쓸 도리 없는 수많은 생명에 감사한다.” 

이토 세이코 <내 맘대로 베란다 원예> 중 


죽어나간 화분의 개수를 세는 대신, 크고 작은 화분과 함께 했던 추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브로콜리가 뾰족한 싹을 틔우자, 여기저기 영상통화를 걸어 “우리 애기 좀 봐, 귀엽지?”하며 호들갑을 떨던 일. 물꽂이로 화분을 늘려 스킨답서스 대가족을 모아 놓고 흐뭇해했던 일. 조금이라도 영양이 풍성한 흙을 만들어 주려고 과일 껍질을 잘게 잘라 EM 쌀뜨물 발효액을 넣어 부숙 시키며 그 냄새를 향기롭다 여기던 순간.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식물과 소리 없이 대화를 나누던 순간들. 


"견딜 수 없이 슬픈 작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는 증거입니다. 좋은 추억이 있으니 이별이 사무칩니다. ‘잘 키워서’가 아니라 ‘함께 우왕좌왕’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원예가 야규 신고 


조심스럽게 새로운 식구를 들였다. 언젠가 이별이 닥치면 또 견딜 수 없이 슬프겠지만, 지레 겁먹고 사랑하는 걸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빛이 잘 드는 곳에 새 친구를 놓고, 잘 자라라고 속삭여주었다. 서툴지만 최선을 다해 함께 울고 웃으며 ‘우왕좌왕’ 할 것이다. 꼭 식물만이 아니라 그게 우리가 사랑하고 또 살아가는 모습이니까. 


새로 들인 식구들


(*베란더 - 베란다에서 원예 하는 사람. 가드너와 구분하기 위해 저자가 만든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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