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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Sep 20. 2021

'가장 좋아하는 oo?' 같은 질문은 제발 하지 마세요

좀 산만하고 변덕스럽게 보이겠지만

쉽고 흔한 질문이 누군가에게는 몹시 난감하고 어려운 질문이 되기도 한다. 가령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등 순위 매김이 필수인 질문이 그렇다. 


남편이 오랜만에 식구들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 물었다. 모두에게 물었지만 사실 내가 뭘 제일 좋아하는지 몰라 꺼낸 질문이었을 것이다. 남편은 빈대떡, 큰 아이는 볼로네즈, 작은 아이는 블루치즈. 망설임 없이 5초도 되지 않아 답이 나왔다. 질문에 답을 못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질문을 받았을 때 프랑스 여행 중에 먹어보고 반한 블루치즈 소스로 만든 벨기에식 홍합찜 (Moules frites)이 떠올랐고, 어렸을 적에 엄마가 몇 번 끓여줬던 들깨 넣고 끓인 쑥국도 생각났다.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하기엔 좀 이상하다. 몇 번 먹어보지 못했고 베이징에 있는 지금 구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우니(성게알)나 두리안을 좋아하지만, 아무런 조리가 필요 없이 생으로 먹는 해산물이나 과일을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 불러도 될까. 한국에 몇 달 머물 때 집 근처 삼겹살 집에서 먹었던 고추장찌개도 떠올랐지만, 고추장찌개를 좋아한다고 할 수도 없다. 본래 국이나 찌개를 좋아하지 않아 거의 먹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 먹는 걸 즐기고 좋아하는 음식도 많은데, 그중 가장 좋아하는 한 가지를 고르는 일만은 불가능하다. 질문을 받은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순위를 정하지 못하고 계속 고민만 하고 있는 걸 보면.  


음식뿐 아니다. 매일 책을 읽고 인스타에서 책 소개 라방을 진행하면서, 가장 좋아하는 책이나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해 달라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지만 답하지 못했다. 분명 다른 책에 비해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거나 의미가 있는 책이 여럿 있지만, 그중 단 한 가지를 고르는 일은 어렵다. 범위를 좀 넓혀서 10권이나 20권 정도로 리스트를 만들어 볼 수는 있겠지만, 각각의 책이 좋은 이유나 미친 영향이 다 다르기 때문에 비교해서 순위를 매기는 건 불가능하다. 범위를 한참 좁혀 '이번 주에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최근 1년 중 내 생각에 큰 변화를 일으킨 책은?’ 정도라면 또 모르지만... 


가장 좋아하는 꽃이나 색깔, 가장 좋아하는 음악 장르, 가장 좋았던 여행지… 어떤 질문이라도 순위를 매기는 질문은 마찬가지다. 그냥, 다 좋은 걸… 각각이 다른 빛으로 반짝이고 각각 다른 상황에 어울린다. 딱 그때 거기서 그런 조건에서 만났기 때문에 좋았던 거지,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든 다 좋은 게 있을 수 있을까. 으슬으슬 추워지만 뜨끈한 칼국수나 바삭하게 부쳐진 김치부침개가 생각날지 모른다. 나른한 오후에는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에 에끌레어나 래밍턴 케이크가 최고일 수 있지만, 다음 날 오후에는 진한 밀크티에 스콘이 좋을 수도...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고민은 하겠지만, 아마 앞으로도 나는 ‘가장 좋아하는 oo는?’ 같은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 같다. 좀 산만하고 변덕스럽게 보이겠지만, 매 순간 다름을 누리며 그 ‘다름’의 반짝임을 좋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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