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희 Sep 22. 2021

왜 소중히 여기는 건 더 쉽게 깨질까

깨지는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왜 소중히 여기는 건 쉽게 깨질까. 


아끼던 찻주전자 뚜껑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모서리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 찻물이 식을까 봐 서두르다 저지른 실수였다. 짙은 감색 찻주전자에 베이지 색 흉터가 생겨버렸다. 딱지를 억지로 떼고 난 후의 흉터처럼 보기 싫은 흉터가. 내 살점 일부가 뜯긴 것처럼 아팠다. 고가의 물건이어서 아까운 건 아니다. 오히려 그보다 비싼 걸로 갈아치우는 건 어렵지 않다. 다만 아무리 비싸고 아름다운 물건을 들인다 해도, 깨진 찻주전자를 만났을 때의 추억을 대신할 수는 없다. 


웨일스 여행을 하던 중 포트메리온 빌리지에 들렀을 때다. 포트메리온은 선물로도 많이 주고받는 잘 알려진 도자기 브랜드다.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 테이블 위에 자주 보이는 조금 흔한 브랜드. 화려한 꽃무늬를 좋아하지 않아 그냥 훑어보고 지나치려는데, 요란한 꽃그림 사이에 단아하게 앉아 있는 짙은 감색의 작은 티팟이 눈에 띄었다. 꽃과 나비를 잔잔한 블루 컬러로만 수놓은 보타닉 블루 시리즈 티포원도 시선을 끌었다. 한 달 장기여행 중이라 짐을 늘리는 걸 애써 피하고 있었는데, 깨지기 쉬운 도자기라니. 한참을 망설이다 티팟과 티포원을 꼼꼼히 포장해 조심히 집으로 데려 왔다.  


흉터 난 티팟 / 지금은 사라진 티포원


아끼는 건 너무 쉽게 깨진다. 보타닉 블루 티포원은 얼마 써보지도 못하고 산산조각이 났다. 새로 이사 간 집 찬장 유리 선반에 티팟과 찻잔을 진열하고 돌아선 순간 선반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다른 찻잔 세트로 보상받았지만, 여행 중 만났던 그 티포원은 아니다. 여행이 쉽지 않은 요즘, 어쩌면 다시 가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더 크다. 


왜 소중히 여기는 건 너무 쉽게 깨질까. 아끼기에 더 주의하는데 왜 오히려 더 잘 깨질까.  


찬장 선반이 무너져 내릴 때 아끼던 티포원만 깨진 건 아니었다. 많은 찻잔이 함께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그중 어느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깨진 건 아끼는 것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 없이 많은 것들이 깨지지만,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것만 주의 깊게 보기에 그 ‘사라짐’을 인지하는 것이다. 아끼지 않은 수많은 것들은 깨졌다는 사실도 모른 채 쉽게 잊힌다. 


중국에 살다 보면 이 빠진 접시나 컵을 그대로 사용하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나 역시 이 나가거나 약간 금이 간 그릇을 그냥 사용한다. 조심성 없이 막 사용하던 이 빠진 그릇들을 하나하나 꺼내 살펴보았다. 언제 이렇게 다친 걸까. 왜 한 번도 그걸 물어주지 않았을까. 


아끼든 아끼지 않았든 많은 것들이 쉽게 깨질 수 있다. 내가 관심 가져주지 않았을 뿐. 그동안 무심히 보았던 이 빠진 그릇들을 하나하나 어루만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장 좋아하는 oo?' 같은 질문은 제발 하지 마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