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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Oct 04. 2021

눈물 많아진 베이징, 갱년기에 들어간 걸까

갱년기에 눈물을 흘리는 법

생전 안 울던 남성이 50대에 들어서면 아침 드라마를 보고도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베이징도 갱년기에 들어간 걸까. 창문에 부딪쳐 주르르 떨어지는 빗물이 속 시원히 울어재끼지 못하고 애써 참고 있다 흘리는 눈물처럼 보였다. 


몇 년 전, 상하이에서 베이징으로 이사 왔을 때, 장화와 우비, 그리고 우산 여러 개를 버렸다. 그래도 가끔은 필요하겠지, 하고 남겨 두었던 우산 하나를 비 예보가 있을 때 들고나갔지만 펴 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들고 돌아왔다. 한두 방울 똑똑 떨어지다 마는 비였던 것이다. 상하이에서는 새로 바른 벽지에 1년도 안 되어 곰팡이가 슬었고, 빨래를 말리려면 여름에도 보일러를 틀거나 빨래건조기, 제습기 등을 돌려야 했다. 그래서인지 베이징의 건조함이 더욱 낯설었고, 피눈물도 없는 인간처럼 차갑게 여겨졌다.


그런데 베이징 날씨가 언제부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이 많아지고, 내리기 시작하면 금세 그치지 않는다. 며칠 내리 쏟아지는 비를 볼 때면 '여기가 동남아인가'하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주관적인 감상만은 아니어서 얼마 전 베이징시 기상국에서 평균 강수량이 최근 20년 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베이징은 원래 건조한 곳이었기에 배수시설이 엉망이라, 비가 조금만 내려도 도로 곳곳이 침수되고 여기저기 물웅덩이가 생긴다. 아파트 단지 내 지하주차장이 침수되어 주차한 자들을 급히 빼는 소동도 여러 번 있었다.  


며칠 전 빗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횡단보도를 막 건넌 후 보도로 올라서려는데 커다란 물웅덩이가 가로막았다. 웅덩이가 넓어 도저히 뛰어서 건널 수 없었다. 웅덩이 전체를 돌아서 가자니 보도가 아닌 찻길로 한참을 걸어야 할 듯했다. 웅덩이를 들여다보다 비교적 얕아 보이는 곳을 골라 디뎠다. ‘앗, 차가워’ 할 각오를 하고 발을 디뎠는데, 운동화 전체를 적시며 스며든 빗물은 방금 지린 오줌처럼 뜨뜻했다. 차라리 차가웠더라면 조금은 상쾌했을까. 잔뜩 인상을 쓴 채 철벅철벅 길을 걷는 동안, 빗물의 온기가 서서히 사라지며 발이 서늘해졌다. 뜨뜻한 빗물이라니, 정말 베이징이 흘리는 눈물이란 말인가.  


왜 갑자기 눈물이 많아진 걸까. 베이징이 정말 갱년기에 들어섰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담아둘 수 없는 것들이 결국 흘러나온다는 걸 안다. 이를 악문다고 마냥 참을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슬픔이든 아픔이든 안 보이는 곳에 밀어 넣고 덮어두길 원하지만, 꺼내놓고 바라보는 편이 훨씬 잘 털어낼 수 있는 방법인지 모른다. 


울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 우는 때와 모습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시도 때도 없이 징징거리며 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래 참았다 폭발하듯 눈물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 화장실이 없을 때는 오줌을 조금씩 싼 후 말리면 된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게 실제로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오줌 대신 눈물에 적용해 보고 싶다. 아주 조금씩 흘린 후 누군가 눈치채기 전에 말려야지. 그냥 참으려다 터지면 갑자기 빗물 많아진 베이징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끌지도 모르니까. 그런 요란함은 어쩐지 싫다. 


이렇게 마음먹은 지 하루도 채 안 되어 눈물을 들키고 말았다. 부끄러운 내 마음을 아는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베이징이 속엣것을 꺼내는 동안 나는 비를 핑계 삼아 우산을 들고 가만히 가린다. 빗물과 빗소리에 슬쩍 실어 내 것을 흘려보내려고. 빗물과 눈물이 섞이니 미지근하고 싱거워졌다. 베이징에 비가 더 많이 내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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