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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Oct 01. 2021

나무를 갖고 싶어 하다 나 자신이 나무가 되어가는 걸까

한 곳에 오래 살면 생기는 일

감나무가 갖고 싶었다. 지난해부터 문득 나무에 눈길이 가더니, 여행 중 잠시 머무는 집 뜰에 있는 감나무마저 내 것 인양 여기며 푸른 감이 얼른 익기를 바라기도 했다. 감이 익을 무렵 다시 가보지도 못할 거면서. 그토록 감나무 타령을 하더니 집에 돌아오고 나자 까맣게 잊고 말았다. 손바닥만 한 땅도 없으면서 감나무라니, 요원한 꿈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베이징은 타국 땅이다 보니, 머물고 있음에도 떠돌고 있는 듯 느껴져서.


며칠 전 문득 집 앞에 감나무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집 안에서 창밖을 내다볼 때는 보이지 않지만, 밖으로 나서면 몇 걸음 걷기 전에 볼 수 있으니 '집 앞'은 분명 '집 앞'이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이제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제야 발견하다니. 길을 다닐 때 주위를 전혀 둘러보지 않고 생각에 빠져 걷는 건 아주 어릴 적부터 있던 버릇인데 여전한 모양이다.  


하지만 내 버릇 탓만 하기에는 감나무가 좀 이상했다. 몸통은 꼬챙이처럼 가는데, 오랫동안 이발 한 번 못해본 것처럼 머리는 산발인 데다 여기저기 잡아 뜯긴 것처럼 잎의 분포도 고르지 않다. 조금 붉어진 열매를 보고 겨우 알아챈 거지, 어디를 봐도 감나무의 풍채가 아니었던 것이다. 내 머릿속 감나무는 잎을 떨군 나뭇가지에 주홍빛 감을 주렁주렁 단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빗질조차 하지 않은 머리채 같은 검푸른 잎사귀 틈에서 감을 겨우 찾아내야 할 줄은 몰랐다. 


병에 걸렸는지 푸른 잎들 사이에 누렇게 시들어버린 잎이나, 이파리에 그득 찍힌 반점들이 보인다. 몇 개 열린 감도 익는 속도가 다 달라 여전히 푸른 감이 있는가 하면, 붉은빛을 띠는 감도 있다. 아직 채 익지 않은 누런 감에 작은 종기 같은 것이 오종종하게 돋아 있다. 붉은기가 돌며 좀 익었나 싶은 감 몇 개는 새에게 쪼인 건지 툭 터진 구멍으로 무른 과육이 흘러나왔다. 얼마 되지도 않는 감 열매가 하나같이 보기 싫어, 이 나무는 감나무가 아니라고 부인하고만 싶다. 한동안 그 집 마당에 쓰레기만 잔뜩 쌓여 있다 어느 날 누군가 이사 온 것 같더니. 어쩌면 오랜 시간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해 감나무는 흉측하게 변해갔는지도 모르겠다.


젊은 시절 내내 떠돌이처럼 여기저기 살아서 그런지, 한 곳에 몇 년째 살고 있다는 사실이 좀처럼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싶어 좀이 쑤시기도 하고, 같은 풍경만 바라보자니 식상하기도 하고. 교민사회다 보니 매년 많은 사람을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떠나보냈다. 그런데 며칠 전 그렇게 헤어졌던 이를 둘이나 다시 만났다. 귀국했다 6년 만에 재발령 받아 나온 것이다. 한 곳에 오래 머물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무를 갖고 싶어 하다 나 자신이 나무가 되어가는 걸까. 


언제 이곳을 뜨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지금으로선 언제일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두어 달 후면 베이징으로 이사 온 지 8년이 된다. 나도 모르게 땅속으로 뻗어 내리고 있던 뿌리가 이제는 제법 깊이 박혔을까. 이왕 나무가 되어 간다면, 한 번이라도 더 눈길 주고 싶은 나무가 되고 싶다. 매끈한 주홍빛 감을 주렁주렁 매단 아름다운 감나무나, 한여름에 커다란 그늘로 뜨거운 해를 가려줄 수 있는 튼실한 나무가. 누군가 떠났다 오랜만에 돌아왔을 때, '왜 아직도 안 베어버린 거야’ 하고 투덜거림을 듣는 나무가 아니라, 다시 보게 되어 반가운 나무가 되고 싶다. 그들이 떠나 있던 그 오랜 시간 이곳의 이야기를 수피에 잘 새겨 넣은 나무가. 그러려면 내가 뿌리내리고 있는 이 땅을 좀 더 사랑해야 할 것이다. 진짜 나무와 달리 사람은 사랑을 받은 만큼 잘 자라기도 하지만, 자기가 사랑을 쏟아부은 만큼 더 자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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