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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Oct 21. 2021

'미'를 잘 외워 두세요! 그것만은 잊으면 안 돼요

애착 유형 '불안형'이 사랑을 배워가는 법

얼마 전 남편과 ‘Falling slowly’를 듀엣으로 함께 불렀다. 남편은 늘 함께 하모니를 이루고 싶어 했지만 음치인 나 때문에 번번이 실패하곤 했다. 그러다 내가 보컬 레슨을 받기 시작하면서 다시 도전하게 된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하모니를 이루는 데 성공했지만, 몇 부분에서 떨림이 큰 내 음정이 심하게 흔들렸다. 나의 ‘미’는 그의 낮은 ‘도’와 함께 울릴 때는 미♭에 가까웠고, 한 옥타브 높은 ‘도’와 함께 울릴 때는 ‘파’에 가까워졌던 것이다.
 

세상에 떨고 있는 건 분명 나 혼자는 아니다. 물리적으로 우리 모두는 떨고 있다. 빛조차 진동이 공간으로 전파되는 파동이니,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우주의 모든 것은 미세한 떨림이다. 하지만 떨림의 크기나 주변에 영향을 받는 정도는 모두 다르다. 


내 음정은 그림을 그릴 때의 색상처럼 끊임없이 변한다. 늦은 나이에 유화를 배우기 위해 화실에 다닌 적이 있는데, 그때 세상에 고정된 색이라는 건 없다는 걸 알았다. 빨갛다고 믿었던 사과를 붓질할 때도 빨간 물감 하나만을 쓰는 법이 없었다. 사과 옆에 놓인 바나나의 노란빛이 사과에 스며들고, 사과 밑에 깔린 천의 초록빛도 스며들고. 확고하다 믿었던 빨강은 옆에 놓인 색상에 의해 끊임없이 진동하고 변화했다. 우리도 그림 속 사과처럼 곁에 있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떨림을 교환하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물론 그 정도는 다르지만. 


남편과 함께 한 결혼 생활은 내 애착 유형*마저 바꾸었다. 결혼 전 나는 ‘불안형'으로 어떤 연애든 드라마틱한 비극으로 만드는 타입이었다. 언제든 상대에게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으로 관계에 집착하고 그로 인해 더 상처 받는 악순환에 빠지는. 마치 ‘미’를 정확히 잡지 못하고 끊임없이 주변 소리에 영향을 받으며 흔들리는 내 음정처럼. 그런 내가 ‘안정형’인 남편 곁에서 십여 년을 살고 나니 ‘안정형’으로 바뀌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남편은 나를 떠나지 않고 사랑할 것이라는 걸 믿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변의 영향을 받으며 끊임없이 흔들리는 불안한 나를 곁에서 꽉 붙들어 주던 남편이 이제 며칠 후면 집을 떠난다. 여러 사정에 의해 몇 달은 족히 떨어져 있어야 할 것이다. 혼자 있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벌써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미**’를 잘 외워 두세요. 그것만은 잊으면 안 돼요. 


정확한 음을 찾지 못하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나 같은 음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내 질문에 보컬 선생님이 해준 답이다. 어떤 음이 내 귓가에 울리며 흔들어대도 ‘미’를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엄마가 자리를 비웠을 때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 모른다고 두려움에 떠는 불안정한 아기가 아니라, 엄마가 다시 올 것을 믿기에 평안할 수 있는 안정형 아기처럼. 떨어져 있어도 변하지 않는 많은 것들을 기억해야 한다. 남편의 음정을 따라가며 한 음을 노래하는 것이 편하긴 하지만, 때로는 떨어져 정확한 내 ‘미’를 소리 낼 수 있어야 남편의 ‘도’와 함께 아름다운 화음을 이룰 수 있는 것처럼.  


남편이 떠나도 함께 했을 때의 ‘미’를 기억하며 노래할 것이다. 여전히 흔들리고 틀릴 때도 많겠지만, 점점 더 확고한 ‘미’를 낼 수 있으리라 믿으며. 




*애착 이론에 따르면 애착 유형*은 크게 안정형(50%), 불안형(30%), 회피형(20%)이 있다. 안정형은 말 그대로 타인에 대한 신뢰감이 있어 대인관계가 원만하다. 불안형은 관계에 있어 늘 버림받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을 안고 살다 보니 상대의 낯빛을 살피고 감정과 행동이 그에 크게 좌우된다. 회피형은 가깝고 친밀한 관계를 부담스럽게 여기고 혼자 있을 때 더 편안함을 느낀다. 


**Falling Slowly 화음이 시작될 때 여성 보컬이 들어가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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