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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Oct 29. 2021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꼭 먹고 싶어 할 필요는 없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일 뿐

이제 한동안 빈대떡을 부칠 일은 없을 것이다. 귀찮은 일에서 해방되는 것임에도 가슴이 시린 건 왜일까.


남편이 몇 달 만에 돌아온 날도, 그리고 다시 떠나는 날도 녹두 빈대떡을 부쳤다. 녹두에 약간의 멥쌀을 넣어 불린 후 갈고, 고기와 고사리나물, 김치 등을 볶고 무쳐 잘게 다진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빈대떡을 노릇노릇하게 부쳐낸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지만, 빈대떡을 부치는 순간만큼은 행복하다. 게다가 이 번거로운 음식을 얼른 다시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녹두 반죽을 올린다는 건 그걸 먹어줄 사랑하는 이가 내 곁에 있다는 뜻이니까. 


남편이 떠나는 날 새벽에 부친 빈대떡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고르는 데는 실패했지만, 사랑하는 이에게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해줄 수는 있다. 그러고 보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반드시 가장 좋아해야 할 필요는 없는 건지 모른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그저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가 그걸 기억하고 준비할 수 있기 위해 필요한 건지도. 


가장 좋아하는 걸 하나로 꼽지 못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함께 지낸 지난 석 달 동안 많은 노력을 했다. 툴루즈에서 친구들과 함께 먹은 물-프리트(Moules-frites)를 찾기 위해 수시로 검색해 몇 번 시도했지만, 블루치즈 베이스 소스를 찾지 못해 내게 미안해했다. 신선한 성게알을 먹이려고 다양한 일식집을 순회하기도 하고, 혼자서는 내가 꼼짝 안 하고 처박힐 걸 알고 일부러 사는 동네를 벗어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을 찾아 부지런히 데리고 다녔다. 떠나기 전날은 삼겹살을 같이 먹었다. 양념된 고기를 싫어하는 내가 양념갈비만 먹는 아이들과 남편 없이는 절대 가지 않을 곳이 삼겹살 집일 테니까. 


좀 번거로운 음식이라도 나는 빈대떡 하나만 준비하면 되는데,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고르지 못하는 나를 위해 남편은 오랜 시간 많은 수고를 했다. 공항으로 떠나는 남편이 탄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다 돌아서니,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하나로 고르지 못한 것마저 미안해 눈물이 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이제부터 녹두 빈대떡이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꼭 먹고 싶어 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 번거로운 음식을 만들 때 가장 행복하다면, 그것이 곧 가장 좋아하는 음식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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