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희 Jan 19. 2022

여러분은 어떤 소설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가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설_<선릉 산책> <대가 없는 일>

두 남학생이 있습니다. 둘 다 학교 폭력의 중심에 있었죠. 

A는 피해자로, B는 가해자라는 이름으로. 


A는 엄마가 식당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운동화를 혀로 핥아 닦거나, 대걸레가 항문에 꽂히는 고통과 수치를 경험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화장실 변기에 처박혀 있는 걸 본 누군가에 의해 A는 응급실로 보내지고, 학교 선도부로 일이 넘어갔어요. 하지만 교감 진급을 앞둔 담임과 의사, 변호사, 대기업 임원 부모를 둔 가해자가 한 편이 되자, A는 사과 한 마디 제대로 듣지 못합니다. 오히려 출석일수 문제로 제적을 당합니다. 


B는 옥상에서 떨어진 피해 학생의 죽음으로 살인죄가 적용되어 10년 동안 감옥에 갇힙니다. 자신이 밀지도 않았는데, 실질적 가해자들은 모두 쏙 빠지고 B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간 거예요. 10년 동안 복기하고 기록하고 생각하기를 반복. 그 모든 것이 똑똑한 부반장이 시키는 대로 한 것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해부학을 공부하던 부반장은 고무망치로 엉덩이와 허벅지를 때리라든지, 권투 글러브를 주먹에 끼고 얼굴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때리라든지, 수건으로 돌멩이를 감싸 머리를 때리는 법 등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거든요. 그렇게 해야 겉으로 상처가 남지 않아 지속적인 폭력을 가할 수 있다고요. B를 가해자라는 이름으로 불렀지만, 실제로는 B 역시 피해자였습니다. 


A는 조회가 있는 날 학교 옥상으로 올라가 몸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여 자신을 활활 태우며 꽃이 됩니다.


B는 부반장을 찾아가 어리숙한 표정으로 대화를 하다 결정적인 증거를 잡아내자 옷 속에 감춰둔 휴대폰으로 동생에게 녹음 파일을 전송합니다. 감옥에서 10년 동안 진술 형식으로 기록한 노트도 경찰에 보내고요. 


A와 B는 모두 제가 최근에 읽은 단편 소설의 주인공이에요.


* A는 김혜지 작가의 ‘꽃’ (대가 없는 일) 

* B는 정용준 작가의 ‘두 번째 삶’ (선릉 산책) 


인스타 '책 읽어 주는 작가 윤소희 @sohee_writer' 책 소개 라방 #35_<선릉 산책> <대가 없는 일>



여러분은 두 소설 중 어떤 소설이 좋으세요? 


두 소설 다 학교 폭력이라는 비슷한 소재를 다뤘고, 피해자의 입장을 잘 묘사한 소설입니다. 

실제로 읽고 문체도 봐야 하고, 여러 가지를 살펴본 후 자기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소설을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 볼게요. 


이 소설 중 하나의 주인공이 된다면 어떤 소설의 주인공이 되고 싶으신가요?


소설 자체의 문학성이나 작가의 스타일만 볼 때와는 어쩌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독자로서 비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주인공이 된다면 비극으로 끝나기를 바라지 않을 테니까요. 


'내가 살아온 삶을 책으로 쓰면 몇 권이야' 

이런 얘기 들어봤을 거예요. 농담이 아니고 우리의 삶은 한 권의 책, 한 편의 소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죠. 그리고 나는 세상의 단 하나뿐인 그 소설의 주인공이자 작가죠.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는 앞으로 닥칠 위험도 알고, 어떻게 될지 짐작도 가고 그러는데, 주인공은 그걸 모르죠. 그런 모습을 보면 참 답답합니다. 만약 그 주인공이 그 소설의 주제, 작가의 의도를 알고 있다면 그렇게 답답하게 굴지 않을 텐데… 그런 생각 안 해보셨나요? 


지난 삶, 즉 소설의 앞부분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소설 앞부분을 분석해서 그동안 내 삶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지 파악해 보고,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면 멋진 소설이 될지 생각해 본다면 남은 소설을 훨씬 더 담대하게 써나갈 수 있을 거예요. 



소설의 주제


이 보잘것없는 삶이 무슨 소설이 되고, 책이 되나요?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갈등과 긴장감 없이 주인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잘 되기만 하는 소설을 누가 읽겠어요. 배신도 당하고, 버림도 받고, 수치도 당하고… 이런 갈등이 있어야 흥미진진한 소설이 되고, 또 그 갈등이 표현되는 방법에서 그 소설의 주제나 작가의 가치관, 성품 같은 게 드러나는 게 아닐까요. 


우리 삶 중에서도 가장 드러내고 싶지 않은 그 부분… 바로 그 지점들이 내가 주인공인 소설의 가장 흥미진진하고 살아 있는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걸 통해서 내 삶이라는 소설의 주제, 테마가 나타나는 거죠. 그러니 "왜 나는 이런 일을 겪는 거야?" "왜 이런 상황에 빠진 거지?" 등 갈등 지점을 마냥 불평하고 원망하고만 있을 게 아니라, 그걸 통해서 어떻게 내 삶의 테마를 이끌어갈지를 고민해 보세요.



소설의 캐릭터


캐릭터도 마찬가지예요. 변화가 없이 끝까지 똑같은 납작한 주인공도 있지만, 대부분 좋은 소설의 주인공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내적, 외적으로 성장하며 변화합니다. 


변하지 않고 고정된 캐릭터들은 주로 변하지 않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이야기에 적합합니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가 좋은 예가 될 수 있어요. 주인공 제이 개츠비는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사랑의 마법에 홀린 현재 상태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결국 자신의 아집 때문에 죽게 되죠. 


여러분 자신의 캐릭터를 잘 분석해 보세요. 지금 이대로 너무 만족스럽다면 고정된 캐릭터로 계속 밀고 나가도 되겠지만, 변화/성장하면 더 멋지겠다 생각된다면 어떤 방향으로 변화/성장하는 소설을 쓰면 좋을지 생각해 보세요. 



소설의 배경


소설을 읽다 보면 한 공간에서 나서 죽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사는 인물도 있지만, 배경을 옮기는 캐릭터도 있어요. 저는 열다섯 살 때 중국어가 좋아서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중국과 한국이 수교도 되기 전이라 주위에 중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거의 없었죠. 그저 영화에서 들리는 중국어가 시를 읊듯 노래하듯 들리는 게 좋아 무작정 배우기 시작한 거예요. 그때는 짐작도 하지 못했지만, 지금 16년째 중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그 작은 행동의 씨앗 하나가 내 삶의 소설 배경을 바꾼 것이죠.



문장의 힘


주인공이면서 그동안 스스로를 조연이나 엑스트라라고 여기며 살았던 분들은 관점을 바꿔서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삶을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주인공인 건 알겠는데,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하며 내 삶의 작가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분들은 지금부터 '내 삶은 내가 쓴다'는 걸 꼭 기억하세요. 

실제로 앞으로 전개될 소설을 노트에 기록하면 더욱 좋습니다. 문장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거든요. 여러 심리학 연구에서 마인드셋이 얼마나 중요한지 결과로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끌리는 문장은 따로 있다>라는 책에 보면 저자가 중학교 때 따돌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일이 소개되어 있어요. 내가 행동해야 세상이 달라진다는 걸 깨닫고 '이제부터 나 자신을 바꿔보자!'라고 결심한 거예요. 그렇게 마음먹고, 자기가 싫어하는 자신의 특징을 종이에 쓴 다음, 그 밑에 그와 반대되는 특징을 썼습니다.


x - 공부 못함, 안경, 살쪘음, 곱슬머리
o - 공부 잘함, 콘택트렌즈, 말랐음, 직모


조금 유치할 수 있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적고 행동하기 시작하니 캐릭터에 진짜 변화가 생깁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을 전교 3등까지 올리고, 안경 대신 콘택트렌즈를 끼고, 매일 아침 달리기를 해서 살을 뺐고, 미용실에서 곱슬머리를 펴는 파마를 합니다. 그러자 예전에 따돌림당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이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 되었어요. 종이에 글로 써서 자신을 객관화하고 목표와 이미지를 구체화함으로 행동을 일으키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작가가 종이에 캐릭터의 변화를 글로 쓰듯, 여러분도 자신이 원하는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글로 써가면서 행동으로 이어갈 때 얼마든지 멋진 캐릭터로 변화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소설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가요? 어떤 캐릭터가 되고 싶은가요?

바로 그 소설, 그 캐릭터를 지금부터 당장 써 내려가세요. 

여러분이 작가이자 주인공인 단 하나뿐인 멋진 소설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2021년 연말 10대들에게 '내 삶이라는 책'이라는 주제로 강의했던 내용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이 완벽할 필요는 없다, 마치 에어비앤비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