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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Jan 19. 2023

초콜릿 상자에서 초콜릿을 고르는 방법

500여 권의 책 나눔을 하며 느끼는 즐거운 고통

초콜릿 상자를 선물 받으면 어떤 초콜릿부터 골라 먹는가. 나는 언제나 제일 덜 좋아하는 것부터 골라먹는 쪽이었다. 초콜릿 상자를 가장 아름답고 달콤한 것들로만 꾸리고 싶어서. 먹는 즐거움보다 그걸 소유하고 바라보는 기쁨이 더 컸던 것이다.


중국에 살면서 한국 책을 공수해 읽는 건 쉽지 않다. 한국에 있는 온라인 서점 계정도 막히지 않게 유지해야 하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해외배송비를 내야 한다. 코로나 이후로는 통관도 오래 걸리고 엄격해져 책을 한 번 배송받을 때마다 귀찮은 일들을 처리해야 한다. 그런 장벽 때문에 책 읽기를 더 멀리하게 된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중국 내에서 책 나눔을 한 지 1년이 넘었다. 500여 권의 책을 중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100여 명에게 나눠 보냈다.


책 나눔을 할 때도 초콜릿 상자에서 초콜릿을 고를 때와 비슷한 고민을 한다. 가장 소중한 책들은 최대한 건드리지 않은 채로 떠나보낼 때 아쉬움이 조금이라도 덜 느껴질 책을 골라야 한다. 초콜릿 고르는 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제일 덜 좋아하는 건 고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는 게 별로 없던 책이나 너무 낡은 책은 나눔에서 제외한다. 초콜릿은 내가 먹는 거지만, 책 나눔은 남에게 건네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눔을 처음 시작할 때는 초콜릿 상자를 처음 열었을 때와 같았다. 단 한 권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언젠가 다시 읽고 싶을 것 같고, 내가 남긴 흔적들도 아깝기만 했다. 그토록 소중한 책을 한 권 한 권 골라낸 후 책을 내보내는 날 조금 울었다. 정성 들여 키운 딸아이 시집이라도 보내는 것처럼. 책을 받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내준 피드백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위로를 받았다. 나보다 더 아껴줄 수 있는 사람에게 책을 보내는 건 사랑하는 책을 위해 옳은 선택일 테니까. 한두 번 책을 나누고 나니, 책을 떠나보내는 일이 조금 수월해졌다. 경험이 기준이 되니 나눌 책을 고르는 것도 덜 고통스러워진 것이다. 지난번에 그 책을 보냈으니, 이 정도 책은 보낼 수 있지, 하는 기준이 생긴 덕이다.


작년에 500 권 나눔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자마자 1천 권을 향해 다시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뭐든 계속하는 것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누적이 만들어내는 기적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려움이 다시 찾아왔다. 어느 정도 덜 좋아하는 초콜릿을 골라내고 나니 남은 초콜릿 모두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게 도무지 덜 좋아하는 걸 골라낼 수 없게 된 것이다. 며칠 전에는 남편이 "혹시 OOO 작가 책 있어?" 하고 물어왔다.

"있었지, 두 권이나. 근데 벌써 다 나눔 했지."

남편은 아쉬워했다. 문장이 좋다는 칭찬을 여기저기서 보게 되자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어 졌다는 것이다. 

"10년이나 책장에 꽂혀 있어도 관심도 없더니."

남편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아쉬움에 괜히 남편을 타박했다.


초콜릿 상자에 코를 박고 있으면 달콤한 향기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앙증맞게 예쁜 면면을 바라보면 단 한 개도 잃고 싶지 않아 꼭 쥐고만 싶어 진다. 그때는 초콜릿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어야 한다. 내가 초콜릿을 건네주고 싶은 사람, 그 초콜릿을 받아 들고 기뻐할 사람을 본다. 초콜릿보다 더 사랑스러운 사람들. 쓸모없는 거나 어차피 버릴 것을 주는 것은 나눔이 아니다. 쓰레기처리일 뿐. 아깝고 소중한 것을 건넬 때 진짜 나누고 싶었던 것, 사랑이 전해진다. 


초콜릿을 받고 기뻐할 누군가를 떠올리며 오늘도 초콜릿 상자를 열고 초콜릿을 고른다.


매주 위챗 단톡방 '책과 함께'에서 원하는 분들에게 책을 나눠 드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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