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소희 Apr 29. 2023

달리지 못하는 러너도 마라톤에 나가도 될까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만약 묘비명의 문구를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고 했다.

마라톤 레이스를 하다 보면, 끝까지 수월하게 달릴 수 있는 날도 있겠지만, 도중에 갑작스러운 통증이나 기력 상실로 도무지 달릴 수 없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그럴 때 순위나 기록은 이미 망가져버려 어떻게 손 쓸 수 없지만, 최소한 완주할지 말지, 또 완주한다면 어떤 자세로 완주할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아픔은 피할 수 없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

가령 달리면서 '아아, 힘들다! 이젠 안 되겠다'라고 생각했다고 치면, '힘들다'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젠 안 되겠다'인지 어떤지는 어디까지나 본인이 결정하기 나름인 것이다. 이 말은 마라톤이라는 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간결하게 요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최근 많은 것들을 슬그머니 놓아버렸다. 골프를 배워 사람들과 필드에 나갈 수 있는 수준을 만들자는 계획을  연초에 세워놓고 손가락 건초염 때문에 포기했고, 하루도 빼놓지 않던 만 보 걷기도 오금 통증 때문에 그만두었다. 그 누구에게도 읽히지 못하는 소설을 써 공모전에 보내는 일을 두고 망설이고 있는 중이다. 조금만 더 힘을 빼면 내 꿈은 스르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져 버리겠지. 



얼마만일까. 모자를 쓰고 운동화를 챙겨 신은 후 집 밖으로 나갔다. 만 보 근처에도 못 가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다시 걸어보고 싶었다. 이렇게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통증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Pain is inevitable) 하지만 아픔을 달래며 천천히 걷기 시작하자, '이제 끝났다'라는 마음만은 조금 멀리 밀어둘 수 있었다. (Suffering is optional)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 본 하늘에 깃털 같은 구름이 깔려 있었다. 보드라운 깃털이 아픈 부위를 살살 간질이며 쓸어주는 듯했다. 


동네를 걷다 바라본 하늘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마저 내게는 너무 버겁다. 나는 아직 달려본 적도 없는 러너니까.

적어도 끝까지 주저앉지는 않았다, 정도라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봐, 마라톤은 달리는 경기라고!" 하고 누군가는 지적할 것이다. 

"아, 죄송해요. 걷거나 기어서라도 완주만 할 수 있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완주를 위해서는 좀 비굴해져야 할지 모른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 레이먼드 카버




이미 눈치챈 분들도 있겠지만, 책 제목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책 제목의 원형을 허락받아 쓴 것이다.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


물론 나는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writing 으로 읽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콜릿 상자에서 초콜릿을 고르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