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기와 끊기 사이에서
평생 산에 오른 적이 딱 두 번 있다. 한 번은 스무 살 때 친구와 함께 학교 옆 관악산을 올랐다. 등산복이나 등산화를 준비하기는커녕 굽이 있는 옥스퍼드 화를 신고 꾸역꾸역 올라가다 바로 눈앞에 정상을 놔두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내려 왔다. 다른 한 번은 첫 직장인 KBS에서 받은 신입사원 연수 때. 등산화를 빌려 신고 갔지만, 하산 후 엄지발톱 두 개가 새까맣게 멍들더니 모두 빠져버렸다.
겨우 두 번의 등산 경험이 징크스가 된 걸까. 나는 정상을 코앞에 두고 미련 없이 돌아내려 오는 사람, 언제든 잘 그만두는 사람이 되었다. 남들이 선망하는 직장인 방송국도 금세 그만두었다. 심지어 회사에서 퇴직 대신 휴직을 권했음에도 듣지 않았다. 당시 주말 9시 뉴스를 진행했으니 9시 뉴스 메인 앵커가 될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마저도 내 결심을 바꾸지 못했다. 내 사전에 '미련'이란 단어가 없었다.
그렇게 칼처럼 잘도 마음을 잘라 거둬들이던 내가 10년 넘게 소설에 목을 매고 있다. 지나치게 오래 버텼다. 이미 끈기의 수준을 넘어 미련과 집착일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놓지 못하고 있다. 살면서 해본 그 어떤 일보다 오랜 시간을 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로는 매몰비용, 현상유지 편향, 몰입상승효과 등을 떠올린다. 버틸수록 손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하루라도 빨리 그만두는 게 손해를 줄이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도.
그래, 그만 두자.
계절의 여왕 5월을 맞아 결단하고 칼을 뽑아 들었다. 소설을 그만두고 생긴 시간에 봄나들이도 가고, 사람들도 만나고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소설은 단 한 줄도 더 쓰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계속 아팠다. 지난 3년 반 동안 한 번도 걸리지 않았던 코로나에도 감염되었다. 증상도 발열이나 오한, 목 통증이 아니라 무력증으로 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할 수도 없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하루종일 누워 잠만 잤다.
칼을 뽑았다고 믿었지만, 난 여전히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끈기와 끊기 사이에서.
왜 자꾸 쓰고 싶을까?
이상한 아름다움이지.
보답받지 못하는데도?
그런 마음 때문에 인간은 쓸쓸해지는 거고.
-염승숙의 소설 '프리 더 웨일' 중
진단키트에 여전히 두 줄이 뜬다.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오늘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이 병에서 나는 낫고 싶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훌훌 털고 일어나 그를 모르는 척 사는 세계로 들어갈 자신이 없어서. 연애를 하다 실연을 해도 금세 툭툭 털고 일어나던 내가 소설이라는 이 지독히 나쁜 남자와는 쉽게 헤어지질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