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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May 21. 2023

불쌍한 유기견을 돕고 싶었음에도 돕지 못한 이유는?

부족한 건 마음이 아니라 마음을 담을 그릇

뒤늦은 코로나로 일주일 넘게 집안에 갇혀 지내다 오랜만에 남편과 산책을 나왔다. 예전 같으면 남편은 달리기 위해 속력을 내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졌을 텐데, 남편도 나도 빠르게 걷거나 뛸 기운이 없었다. 평소보다 느릿느릿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크면서 말수가 적어진 아이들, 좋아하는 일들에서 멀어지고 대신 신경 쓰고 해야 하는 일은 늘어나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문득 반려견 얘기가 나왔다.


우리도 강아지 키울까?


뭔가 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강아지 한 마리가 보였다. (개일지도 모른다.) 마침 주변에는 주인과 산책하는 개들이 많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계속 걷는데, 강아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우리와 속도를 맞추며 걷는 게 아닌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남편과 나는 빨리 걸었다 천천히 걸었다 하며 강아지의 눈치를 살폈다. 강아지는 마치 처음부터 우리와 산책을 같이 하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걸음 속도를 우리에게 맞췄다. 걸음을 멈춰 보았다. 강아지도 멈추고 잠시 주저앉는다.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길을 걷는다. 강아지도 뒤를 돌아 따라온다. 한동안 이리저리 방향과 속도를 바꾸며 우스꽝스럽게 걸어보니, 강아지는 우리를 따라오는 게 확실했다.


강아지의 모습을 자세히 살폈다. 개의 품종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어 분별할 수는 없으나, 내가 알고 있는 품종 중에는 웰시 코기와 가장 닮았다. 사람을 잘 따르는 걸로 보아 분명 누군가의 반려견이었겠지만, 주인과 헤어진 지는 꽤 된 듯 보였다. 털이나 얼굴 상태를 볼 때, 최근에 사람의 손길이 닿은 것 같지는 않았다. 


어떡하지?


남편과 나는 고민에 빠졌다. 집에 개털에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가 있다. 여행 등으로 집을 비우는 경우도 많다. 무엇보다 나는 개를 무서워한다. 마침 반려견 얘기를 하고 있었지만, 진짜 반려견을 들이자는 말은 아니었다. 우리 삶에 생기와 활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을 뿐.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단지 입구에 들어서자, 그 앞을 지키고 있는 경비 아저씨가 두려웠는지 강아지는 더 이상 따라오지 못했다. 분명 안도했으면서도, 하루종일 강아지의 표정과 모습이 아른거렸다. 심지어 꿈에도 나타났다. 


여보, 우린 착해 보이기만 하고 실제론 전혀 착하지 않은 사람들인가 봐.

가여운 생명을 보고도 돕지 않았다는 자책이 밀려왔다. 돕고 싶은 마음이 분명 있었는데, 왜 돕지 못했을까. 


먼저 먹을 걸 줘야 하나. 아무거나 먹으면 안 된다고 들었는데. 뭘 줘야 하지? 병이 있을지 모르는데 병원부터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케이지 같은 것도 없는데 어떻게 데리고 가. 머릿속은 온갖 질문들로 복잡했지만, 제일 먼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작이 불가능했다.


부족한 건 마음이 아니라 그 마음을 담아낼 그릇, 곧 구체적이고 명확한 매뉴얼이다. 나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모르면서 무턱대고 행동하는 것도 위험하다. 돕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유기견을 입양했다가 파양 하는 경우도 많다. 도우려고 나선 행동이 돕지 않느니 보다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유기견에 관해 찾아보며 공부를 시작했다. 혹시라도 산책 길에 그 아이와 다시 마주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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