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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희 Aug 09. 2023

수없이 죽어도 내일을 기대하며 다시 기르고 쓸 수 있는

<식물적 낙관> - 김금희


식물을 돌보는 일은 나 자신을 돌보는 일과 닮았다.

꽤 여러 식물들을 길러보았지만 내 손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건 스킨답서스뿐이다.

애지중지 기르다 또 2,3주쯤은 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하는 나의 변덕을 견디는 일은 웬만한 식물들에게는 어려웠을 것이다.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_ <식물적 낙관> - 김금희


나를 돌보는 일도 비슷해서 변덕이 참 심한데, 잘 견뎌내고 씩씩하게 지금까지 자란 걸 보면 난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스킨답서스를 닮았다.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_ <식물적 낙관> - 김금희


덜컹거리고 움직이는 기차 안에서 움직이지 않는 식물의 이야기를 읽었다.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뿌리를 내리려는 듯.




헤세는 자신이 유감스럽게도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지만 한 가지만은 늘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었고 그것은 바로 "아름답게 사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장 무상한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충고한다.


김금희 - <식물적 낙관> 중




순간, 기차는 덜컹거리지 않았는데 내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 역시 쉽고 편안하게 사는 법을 알지 못했다. 분명 편안한 길을 선택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울퉁불퉁 거칠고 투박한 길만 골랐고 대신 '아름답게' 살 수 있었다. 그 아름다움은 분명 정교하게 세공된 보석 같은 아름다움은 아니었다. 오히려 책에 이어지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풍기는 아름다움이었을 뿐.




그러니 어쩌면 이 여름에 필요한 건 고독을 지우기 위한 노력보다 헤세가 <여름 편지>라는 산문에 남긴 이런 제안들의 실천일지도 모르겠다. 열흘 동안 화병에 꽂힌 채 시들어가는 백일홍 관찰하기. 그 잎의 뒷면도 세세히 들여다보기. 밝은 잿빛으로 변하는 장미의 모습을 생생하게 감동적으로 응시하기. 그렇게 해서 삶의 무상함을 슬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리하여 삶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기.

김금희 - <식물적 낙관> 중





수없이 많은 식물들이 내 손에 죽어가고, 많은 글이 내 손에 망가질지라도,

내일을 기대하며 다시 기르고 또 쓸 수 있는 삶,

그것이 식물적 낙관이 아닐까.


책 읽어주는 작가 윤소희_ <식물적 낙관> - 김금희


덧, 김금희 작가가 남편을 '집사람'이라고 부르는 게 재미있었는데, '집에서 만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런 건 작가의 북토크에서 작가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야만 알 수 있는 디테일이다. 이 작고 사소한 것들을 알고 나면 책을 읽는 일이 더 재미있어진다.



<세상에 하나뿐인 북 매칭> - 윤소희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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