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고 있는 말에는 우리 자신이 의식하고 있는 것만이 담기는가?
우리가 말을 할 때 첫 번째 내가 의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고자 말을 한다. 내가 가진 느낌, 생각, 감정을 말로 정확히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은 과연 가능한가? 애석하게도 우린 여기에 굉장히 어려움을 가진다. 오해를 풀려고 시작한 대화가 싸움으로 번지거나 같은 장소에 동일하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도 들은 사람들은 각기 다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우리가 말을 할 때뿐만 아니라 말을 들을 때 그때의 컨디션, 그전에 있었던 사건, 교육수준, 성별 등등 여러 가지 요소들에 의해 말을 하거나 들을 때 곡해되거나 왜곡된다. 가령 말하는 사람이 중간중간 "저는..." 이라고 추임새를 넣었다고 할 경우,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을 겸손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저자세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렇듯 한 가지 말만 가지고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우리가 말을 할 때 선택하는 단어 역시 자라온 환경, 사고, 언어습관을 대변한다. 지나치게 영어나 한자어를 남발하는 사람은 자신의 유식함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것일 수 있다. 말하면서 상대방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는 사람은 듣는 사람이 하품을 하거나 딴짓을 하면 상처받고 서둘러 말을 끝맺음 하려 할 수도 있다.
말을 한다는 것은(혼잣말은 제외) 상대가 있기 마련이고 그 사람의 태도에 본의 아니게 영향을 받게 된다. 반응을 보고 자신의 말을 가다듬고 속도를 조절하기도 한다. 이런 과정 속에 의식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의식이 발현된다. 자신의 말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고 더욱 힘주어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도 하고 동조하는 태도에 신이 나서 말하기도 한다.
이렇듯 우리가 말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입에서 소리가 나오는 행위가 아니라 타인과 교감하고 의식과 무의식이 모두 발현되어 나타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가 정확히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렵고 고된 일이며 충돌이 일어나기 쉽다.
우리가 대화중에 언성을 높이거나 싸우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건성으로 듣는 태도, 눈을 바라보지 않는 서운함, 반복되는 거짓말 등에 있다. 이것은 말 그 자체보다 그 외면적인 부분이 크다. 말을 하면서 우리는 비언어적인 수십만 가지를 표현하고 있고 또한 그것을 받아들인다. 아이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의 태도를 보고 금세 알 수 있듯이 말이다.
말을 한다는 것이 이렇듯 복합적이고 어렵다. 타인의 태도와 말에 나의 무의식이 자극받아 그 영향으로 내가 다른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내면의 무언가를 건드리고 그것이 외부로 발현될 수 있다. 가령 교수님이 수업을 하다 자신의 말에 건성으로 듣는 제자에 불같이 화가 날 수 있다. 아마 내면에 그 제자로부터 무시당했다는 어떤 무의식이 자극되어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나의 무의식의 영역에 어떤 것들이 자리 잡고 있는지 모른다. 말을 하면서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내가 기뻤는지 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말을 하는 것은 의식, 무의식, 자라온 환경, 교육수준, 성별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주고받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