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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Mar 08. 2023

지렁이가 꿈틀꿈틀

오랜만에 아빠가 해석하는 아이의 작품세계입니다.

오늘 보게 될 작품은 '그림일기 쓰기'입니다.

지금도 하는 활동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국민학생(?) 때도 했던 숙제인데 우리 아이가 초등학생 때도 했나 봅니다.


보실 작품은, 초등학교 3학년 때의 그림일기입니다.

자 그럼 저와 함께 아빠의 마음으로 딸아이의 작품을 감상해 보겠습니다.





제목 : 지렁이가 꿈틀꿈틀!

제목을 단순히 '지렁이'라고 하지 않고 지렁이가 '꿈틀꿈틀'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대상 그 자체가 아닌 대상의 움직임을 제목으로 뽑는 솜씨가 일품입니다(다 예뻐 보임을 이해해 주시길...).


학교에 와서 지렁이를 보았다. 지렁이가 너무 징그러웠다. 색깔이 갈색이었고, 짧았고, 당연이 발도, 손도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문장을 장문의 만연체로 쓰지 않고, 짧은 단문으로 쓰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맞춤법 틀린 것도 있지만 괜찮습니다.


친구들이 지렁이를 보려고 지렁이 주위로 몰려들었더니, 지렁이가 꿈틀꿈틀 댔다.

처음부터 지렁이가 움직인 것이 아니라 친구들이 몰려드니 꿈틀거렸다고 표현합니다.

무심코 지나칠 존재 아니라 주위 환경에 반응을 보이는 '생명'을 지닌 존재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지렁이를 발로 찼더니 실내화 믿 바닥이 매끈 매끈했다. 내가 발로 찼더니 지렁이가 아파하는겄 같았다. 이제부터 발로 차지 않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끝!

여기가 이번 일기의 하이라이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생명을 지닌 존재로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듯 싶더니, 아직 미성숙한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의 행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렁이를 발로 찼더니 신발 바닥이 미끄러웠다'라고 먼저 자기 자신의 처지를 살핍니다.

그다음, '지렁이가 아파하는' 모습이 보였나 봅니다. 아파만 했을까요? 아마 저세상으로 갔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지만 아이는 죽지는 않았을 거라 믿는 것 같습니다.

그런 다음 '발로 차지 않겠다'는 반성과 다짐을 합니다.

도덕적 행동의 3단계를 거칩니다.

먼저 자신을 살피고,

그다음 나로 인해 파생되는 상대방을 보고,

마지막으로 행동의 결과에 대한 반성과 마음가짐을 갖습니다.

아이의 일기를 보면 인간은 타고난 도덕적 품성을 지녔구나를 다시금 생각합니다.





자 그럼 이 일기를 그림으로 어떻게 표현했는지 볼까요?


이날은 '비가 주룩주룩'오는 날씨였나 봅니다. 그래서 지렁이도 땅 위로 나왔겠지요.

처음엔 지나다니는 길을 표현한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지렁이였습니다.

기다란 지렁이인데 중간에 아이가 밟았는지 잘린 지렁이도 보입니다.

아이는 머리에 물음표(?) 표시를 하고 왜 그러지 의아해하고 있고, 다른 아이는 울고 있습니다.

점 같이 보이는 것은 아마도 빗방울을 묘사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

선생님 말씀 : 사랑하는 00아, 앞으로 일기를 꾸준히 쓰자

임팩트 있는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아마 일기를 꾸준히 쓰지 않고 띄엄띄엄 썼나 봅니다. ^^








천진난만하고 순수했던 아이가

공부 때문에

친구관계 때문에

알 수 없는 그 무엇 때문에

지금은 많이 힘들어한답니다.

아빠로서 그때 그 모습을 다시 찾아주고 싶은 마음 한 가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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