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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hos Nov 30. 2023

시험문제 오류가 났습니다.

직원이 잘못했을 때 리더로서 대처하는 방법

"교장 선생님 죄송합니다. 좀 더 꼼꼼하게 검토했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복수정답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00 교과 선생님이 시험문제 출제 오류를 보고하기 위해 교장실에 찾아와서 한 말입니다.


저는 교사 때부터 시험 문제 출제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습니다. 시험은 학생 자신의 학업성취 수준을 판단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교사도 시험을 통해 학생들의 수준을 파악하고 그 결과를 교수 과정에 반영하는 진단 도구이기 때문에 시험문제를 잘 출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문항 출제 전문성을 높이고자 부단히 노력했고, 수능시험을 비롯한 각종 시험의 출제위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하였습니다. 선생님들께도 시험의 중요성과 문항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달라고 자주 강조했습니다.

교장의 이런 마인드를 잘 아는 선생님이어서 죄송했나 봅니다. 또한 선생님 스스로 자존심도 많이 상했을 것이고요.


"교장한테 죄송할 게 뭐 있나요? 선생님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닐 테고. 사람이 하는 일이니 당연히 실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선생님이 시험 보기 전까지 검토를 철저히 한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소리 내어 울지는 않았지만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는 선생님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출제한 선생님이 더 속상할 텐데 교장이라고 혼 내서야 되겠냐는 생각에서요.


다만 선생님에게 말은 안 했지만 시험문제는 교사 한 명이 출제하지 않습니다. 해당 학년을 가르친 모든 선생님이 공동출제를 합니다. 또한 출제한 문제지를 같은 교과 선생님들이 여러 번 검토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항 오류가 생겼다는 것은 정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지 못한 것입니다. 모르고 그랬더라도 책임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이번 문항 오류도 똘똘한 학생 한 명이 이의를 제기하여 발견된 것입니다.

사실 출제 오류가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 중 하나는, 사후 뒤처리가 매우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오류를 낸 선생님이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행정 절차뿐만 아니라 가르친 학생과 학부모의 항의에 대응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합니다. 어찌 됐건 출제 오류로 유불리 학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학생들은 학교에서 크고 작은 잘못을 일으킵니다.

교사마다 학생의 잘못에 대처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어떤 선생님은 학생의 잘못에 크게 화를 내며 벌을 줍니다. 설사 처음 저지르는 잘못일지라도요. 다시는 이런 잘못을 하지 않도록 훈육하는 것입니다.

반면 저는 담임교사 시절에 학생이 잘못을 하면 가급적 크게 혼내지 않고 조곤조곤 대화를 통해 잘못을 뉘우치도록 애썼습니다. 모든 문제 행동에 그런 건 아니고 처음 하는 잘못에 이런 방법을 썼습니다. 중요한 것은 학생이 잘못된 행동을 반성하고 또다시 그런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적어도 잘못된 행동을 알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대부분의 학생들은 부드럽게 타일러도 같은 행동을 반복합니다. 그러니까 청소년이겠죠.


이런 제자가 있었습니다.

고3 담임을 할 때인데, 정말 지각과 결석을 밥먹 듯하는 아이였습니다. 어르고 달래고 수십 번 말을 해도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가정환경을 보니 이혼한 부모 밑에 한 달은 엄마 집에서 또 한 달은 아빠 집에서 번갈아 가며 살았던 것입니다. 겪어 보진 않았지만 돌봄의 부족은 고등학생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 학생을 어떻게든 졸업을 시키고 싶었습니다. 수업일수가 부족하여 유급을 당할까 봐 자고 있는 학생을 깨우러 집에 간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이 학생을 졸업시켰습니다.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학생보다 이 학생 졸업이 더 기뻤습니다.

세월이 한참 흘러 어느 날 전화가 왔습니다.


"선생님 저 영숙입니다. 설마 기억 못 하시는 건 아니죠?"

처음에는 영숙이가 누군지 몰랐습니다. 제자 중에 영숙이가 몇 명 있긴 하지만 이렇게 전화를 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어어 그래 그래. 영숙이구나?"

모른다고 하면 상처받으니까 일단 아는 척을 했습니다.


"선생님 아니었으면 저 고등학교 졸업 못할 뻔했잖아요? 졸업 안 해도 좋다고 선생님께 화도 많이 냈는데, 선생님이 저희 집까지 찾아와서 학교에 데리고 가고 그랬잖아요?"

이제야 기억이 났습니다. 다른 학생은 모두 잊어버려도 영숙이는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당시 영숙이의 인성(?)이었으면 전화할 아이가 아닌데 이렇게 전화를 한 것을 보면 드디어 어른이 됐나 싶었습니다.


"아이고 영숙아! 잘 지내지? 지금은 뭐 하고 살고 있어?

다짜고짜 하는 일이 뭐냐고 묻는 것은 예의가 아님에도 너무 궁금하여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 미용사예요. 이래 봬도 우리 동네에서는 유명한 사람입니다. 제가 선생님 머리 해드릴 테니까 언제 한 번 오세요."




신(神)이 아닌 이상 누구나 실수나 잘못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두세 번 실수(잘못)를 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왕이면 실수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방법이 좋습니다. 꾸짖고 비난하고 책임 소지를 따지는 것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줍니다. 더욱이 본인이 잘못한 것을 아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위로해 주고 응원해 주는 것이 효과가 더 좋습니다. 다시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은 것도 중요하지만 나와 상대방이 좋은 인간관계를 지속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이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이 결국 조직(학교, 회사)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길입니다.  


"네 교장선생님 고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다음부터 좀 더 철저히 검토하여 이런 오류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어깨 펴세요. 이런 일로 의기소침하면 안 됩니다. 쫄지말고 파이팅~"

저의 응원의 말 덕분인지 문을 닫고 나가는 선생님의 얼굴에 미소가 살짝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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