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캐나다 특파원 유녕입니다. 금일 캐나다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영국인 배우자와 저의 교집합은, 추수감사절과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이 영국인도 추수감사절이 없습니다.
추수감사절은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건너온 순례자들이 현지 원주민들에게서 생존 기술을 배우고, 첫 수확을 함께 감사하는 날로 알고 있습니다.
예컨대 동물을 사냥하고, 오래 보관하기 위해 훈연·건조하는 법이나, 옥수수와 콩 같은 작물 재배법을 배웠다네요.
흥미로운 것은, 글로만 읽을 때는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지만 막상 대서양 가까이 살아보니, 현대 문명 없이 겨울(이제는 여름까지도)을 난다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절실히 느낍니다.
폭설에 고립되어, 눈이 녹을 때까지 집 안에 저장된 음식으로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면 섬뜩하지요.
그 지루한 시간을, 그들은 종교로 승화했을까요.
시대를 잘 타고난 제 복에 그저 감사합니다.
물론, 그런 삶을 여전히 이어가는 아미시(Amish) 공동체가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바로 위 사진 참고)
오늘은 요리를 소개한다는 게 많이 멀리 갔네요.
원래 식혀서 먹는 파이라, 어제 Bakewell tart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세계 요리를 찾을 때 영화나 여행 유튜버, 혹은 다큐멘터리(특히 현지인이 먹는 장면이 있는)를 참고합니다.
2021년에 나온 King’s Man을 제가 무척 좋아합니다. 레트로 감성에 라스푸틴의 신비주의까지, 이 영화를 얼마나 많이 봤게요.
이 영화에서 라스푸틴을 독살하려고 영국식 bakewell tart를 청산가리와 함께 구워 시식시키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라스푸틴이 그러지요.
“Very English.”
‘영국식이란 맛은 뭘까?’ 생각하면서 언젠가 구워보겠다고 다짐했는데, 그게 바로 어제였습니다.
앞선 Kitchen Around the World 시즌 1과 달리 이번 연재는 제 취향과 욕망이 버무려집니다.
즉, 제가 좋아하는 음식 위주라는 건데—분명 맛이 없었으면 Bakewell tart는 탈락했을 겁니다.
이실직고... 집에 라즈베리 잼이 없어서 전통을 깨는 딸기잼을 썼어요. 다행히 아몬드 필링이 너무 압도적이라 가능한 대체였습니다. 그러함에도 제 한줄평은 백 번 만들어 드세요.
신랑은 심지어 Bakewell에 가서 먹어봤다고 해서, 그때 그게 지명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알아보니 중세 시대엔 bakewell tart가 파이 형태가 아니라 ‘푸딩’이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젤라틴 푸딩이 아닌, 영국식 푸딩은—오른쪽 사진처럼 목이 멜 듯한, 진한 케이크 형태입니다. 신랑피셜 예전 영국에선 증기로 찌는 형태를 푸딩이라 일컬었다는... 제가 극도로 꺼리는 영국식 크리스마스 푸딩을 현대식으로 부르자면 크리스마스 푸딩 케이크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만... 영국인들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참고로, 이 연재에서 크리스마스 푸딩은 절대 등장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건포도가 들어가 있거든요...
건포도 공포 얘기는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bakewell tart 레시피를 써보겠습니다.
난이도 ‘하’의, 매우 쉬운 파이 요리입니다.
먼저 제가 자주 찾는 컵케잌제마 영상을 클릭해 전체 과정을 한 번 보고 오시길 추천합니다.
재료
파이 반죽 (Pastry):
오븐을 섭씨 180도(화씨 355도)으로 예열합니다.
박력분(또는 다목적 밀가루) 200g
슈거파우더 30g
차가운 무염버터 100g (잘게 썬 것)
달걀노른자 1개
사과식초(또는 레몬즙) 1작은술
차가운 물 2~4작은술
프랑지판 (Frangipane):
오븐을 섭씨 160도(화씨 320도)으로 예열합니다.
라즈베리 잼 (또는 취향에 맞는 다른 잼)
설탕 100g (캐스터슈거, 미세한 흰설탕)
부드럽게 풀린 무염버터 100g
달걀 2개
아몬드 익스트랙(아몬드 향료) 1/4작은술
밀가루 50g
아몬드 가루 85g
먼저 오븐은 섭씨 160도(화씨 320도)로 예열해둡니다.
파이 도우를 먼저 만듭니다.
저는 제마처럼 믹서기가 없기 때문에, 믹싱볼(큰 양재기)에 계량한 밀가루와 슈거파우더를 넣고 거품기로 섞습니다.
그다음 차가운 버터를 넣어 포크로 조사주며 섞어줍니다.
약 80% 정도 섞였을 때, 달걀노른자, 식초를 투하, 단, 얼음을 띄운 차가운 물은 조금씩 넣어가며 농도를 맞춰주세요.
반죽을 손으로 쥐었을 때 흩어지지 않고 뭉져지면 다 된겁니다.
저는 거의 2큰술을 썼는데, 레시피엔 2~3작은술이라니요......
적당한 질감이 됐다면 반죽을 한 덩이로 모아주세요.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랩으로 싸서 1시간 냉장 휴지를 줍니다.
그다음 제과 틀을 준비해 2~3mm 두께로 밀어 성형합니다.
저는 실수로 4~5mm로 두껍게 밀어버렸어요. 여기서 부터 실패의 전조가...
성형 후 다시 냉장고에 넣고 1시간 휴지시킵니다.
휴지가 끝나면 파이 바닥에 포크로 수십 번 구멍을 내 수증기가 빠져나가게 하고,
종이호일을 깔아 그 위에 쌀이나 콩을 얹어 16분간 블라인드 베이킹합니다.
물론, 저는 이걸 깜빡했어요.
“아차” 하는 순간 이미 13분이 지났고, 오븐 안을 보니 그래도 형태가 유지돼 있어서 그냥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16분 후 쌀과 종이호일을 제거하고 다시 5분 더 구워줍니다.
레시피엔 계란물을 발라 다시 굽는다고 돼 있지만, 전 귀찮아서 생략했습니다.
다음은 프랑지판입니다. 전 필링이라고 할게요.
상온 버터와 설탕을 넣고 핸드믹서로 섞어줍니다. (제 버터는 여전히 차가워서 장갑을 끼고 손으로 버무렸어요.)
달걀과 아몬드 오일을 넣어 섞습니다. 섞이지 않고 따로 놀아도 놀라지 마세요. 가루를 넣으면 다 섞여요.
그다음 아몬드 가루와 밀가루를 넣고 잘 섞으면 완성입니다.
거의 다 왔어요.
이제 파이쉘에 잼 1큰술을 펴바르고, 그 위에 필링을 파이핑백에 넣어 짜거나 숟가락으로 올려도 됩니다.
마지막으로 오븐 온도를 섭씨 160도(화씨 320도)로 낮추고 25~26분 굽습니다.
저는 파이 도우를 너무 두껍게 만들어서 총 50분을 구웠어요.
이 제과는 완전히 식힌 뒤 먹습니다.
전 못 참고 3시간 뒤에 먹었는데, 그땐 아몬드 향으로 먹었지만 그래도 맛있었고요.
다음 날 완전히 식은 상태에서도 드디어 먹어보았는데요.
딸기잼은 거의 안 느껴지고, 아몬드 향이 과히 압도적입니다.
So what? how was it?
이 파이는 인생 파이입니다.
Cover photo by Boston Public Libra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