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씻기며
현관을 열고 들어온 그녀
왔어?
실같은 대답과 동시에
허물같은 그림자를 끌고
욕실로 들어간다
평소와 다른 냄새에
소리없이 뒤따라 가보니
멍하니
허수아비처럼
거울만 보고 있다
샤워커튼을 젖혀
들어가라
손짓한다
저항할 힘이 없는 건지
의욕을 포기한 건지
풀썩
들어가 앉는다
이제 보니
신발도 안 벗었구나
미온수를 틀어
샤워기로
그녀의 머리를 적셔준다
상의에 남은
오늘의 잔해가
하의에도
고스란히 누워 있다
감히 말 한 마디
붙일 수가 없어
천천히
머리를 쓰담는다
거품을 내어
얼굴을 조심스레 닦아주며
인사하고 나간
너의 12시간을
상상해 본다
이제 마음 놓고 울어
그녀의 동공은 아직
주인 없는
적막한 가게 안
오늘따라
온수는 냉수 같고
비누가 자꾸
미끄러져
마음같지 않게
손이 자꾸 떨려
샤워기가 대신
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