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보행을 연습하기로 한 그의 선택이 빛을 발했다.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온 가족이 이사를 가게 된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은 직업 특성상 전국 곳곳으로 발령이 났는데, 이 때문에 이미 중학교 때부터 아버지는 인천에 따로 가 있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과천으로 발령이 나서 어머니와 누나가 함께 서울을 떠나야 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머니는 그가 기숙사에서 생활하기를 바랐다. 맹학교 기숙사라면 적절한 도움도 받을 수 있고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를 설득했다. 하지만 그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그는 계속 익숙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살고 싶었고, 가족과 떨어져서 기숙사에 입소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며 한 번 더 대담한 결정을 내렸다. 기숙사에 들어가는 대신 과천에서 서울까지 자신의 힘으로 통학을 하기로 한 것이다. 8시 20분까지 학교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7시 전에 출발해야 한다. 아침으로는 간단히 빵을 먹은 후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까지 왔다. 서울역부터는 활동지원사의 도움으로 시각장애인 이동지원 차량을 타고 학교로 이동했다. 학교가 끝나고는 거꾸로 해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한 후에 어머니가 안 계시는 날이면 저녁으로 배달음식을 먹었다. 그는 그렇게 매일매일 자신만의 길고 험한 길을 오고 갔다.
그가 자신의 학창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다 도착한 지점은 공교롭게도 ‘길’이었다. 공교롭다고 하는 것은, 내가 처음 그와 만나게 된 것도 시각장애인이 걷는 ‘길’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이 걷는 길'은 학교에서 지역 보건에 대한 주제로 보고서를 쓰는 조별 과제를 위해 우리 조가 선정한 주제였다. 나는 당시 학교 가까이에 있는 한국시각장애인가족협회에 전화를 걸어 면담대상을 섭외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우리 조원들은 막연하게 시각장애인에 대한 보고서를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각장애인 당사자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피스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싶지 않았던 무의식이 발동했던 것 같다. 두 번의 시도 끝에 협회 측과 연락이 닿았고, 나는 수화기 너머로 인터뷰 부탁을 하면서 왼쪽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바짝 긴장한 것이 민망할 만큼 협회에서는 흔쾌히 면담을 해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면담 전날 오후부터 시각장애인의 보행 환경에 대한 각종 논문과 보고서를 뒤지기 시작했다. 평소에 인도를 거닐며 별생각 없이 지나쳤던 노란색 울퉁불퉁한 블록과 우뚝 선 작은 기둥에 ‘점자블록*’과 ‘볼라드**’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보행 편의시설을 평가하기 위한 여러 기준들도 이미 마련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점형블록은 인도가 끝나고 횡단보도가 시작되는 지점으로부터 30c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야 한다. 또 그 규격은 30cm 곱하기 30cm이고, 안에는 36개의 동그란 요철이 나 있어야 한다. 의대생들에게 수치화된 이런 기준을 찾는 것은 과제 수행을 위한 필수요건이다. 혈압도 140에 90보다 낮아야 하고, 공복혈당도 126보다 낮아야 하고, 의대생들은 숫자를 무척이나 중시한다. 숫자가 눈에 들어오자마자 우리는 자를 들고 거리를 다니며 규격에 맞지 않게 설치된 점자블록들을 검거해야겠다는 목적의식이 생겼다.
그러나 의대생에게 숫자에 의문을 제기할 기회는 많이 없다. 일단 나부터도 ‘왜?’라는 질문은 다달이 닥쳐오는 시험을 위해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느꼈다. 그런데 동기 한 명이 찾은 논문 하나***가 내 굳은 사고의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 논문은 시각장애인들 몇 명을 대상으로 독립적인 보행 경험에 대해 직접 질의해서 기존의 법률이나 실태조사에서 다루지 못했던 맹인들의 주관적인 경험을 담고 있었다. 배달음식 하나를 시킬 때도 먹어본 사람들의 후기를 참고하는 마당에 시각장애인용 보행 시설에 대해 시각장애인들의 의견을 직접 묻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야기 속에는 숫자로는 절대 담을 수 없는 또 다른 진실이 담겨 있을 테니까.
비가 눈이 되었다가, 다시 눈이 비가 되는 어느 2월 아침, 나는 자꾸만 바람에 뒤집히려고 하는 우산을 붙들고 종로구 효자동의 한 편의점에서 동기를 기다렸다. 곧 한 손에는 우산을, 다른 한 손에는 협회에 감사의 뜻으로 드릴 비타민 음료 한 박스를 든 동기가 씩씩한 발걸음으로 도착했다. 그 걸음새는 나한테도 곧 전염되어 우리는 비를 뚫고 씩씩하게 협회를 찾아갔다.
다섯 명의 시각장애인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10대 혹은 20대인 남자 넷과 여자 하나였다. 전부 심한 시각장애****가 있어 약간의 빛깔이나 형체만 보이는 정도의 시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중 한 명이 A 씨였다.
어색함이 감돈 것도 잠시, 이들은 평상시 도시를 걸으면서 어려운 점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서울은 시각장애인이 걷기에 불편한 도시이기 이전에 위험한 도시에 가까웠다. 특히 처음 가는 길을 걸을 때에는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유도블록을 따라 걷다가 불법으로 세워둔 자동차, 킥보드, 자전거에 부딪히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횡단보도 앞에서는 인도의 턱에 걸려 넘어졌다. 신호등에 부착된 음향신호기를 누르기 위해 손을 뻗다가 주변에 있는 뾰족한 것에 찔려 손을 다치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시각장애인 당사자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면 내가 생각지 못했던 여러 문제점들을 새로이 알게 될 것이라고 어느 정도는 예상했고, 실은 그런 기대를 걸고 인터뷰를 요청한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하나라도 놓칠세라 처음 알게 된 사실들을 열심히 볼펜으로 적었다. 그런데 대화를 하면 할수록 나는 몰랐던 사실들의 빈칸 채우기 이상의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머릿속에는 빈칸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우고 다시 써야 할 부분도 있었던 것이다.
“찾아보니 유도블록은 한 변이 30cm인 정사각형이어야 하고... 또 인도가 끝나는 지점으로부터 30cm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재질도 충격 흡수용이어야 하고요. 그런데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런 규격에 맞지 않게 설치된 유도블록이 많다고 해요. 혹시 평소에 이런 부분은 체감을 하시나요?”
잠깐의 정적이 이어지다 한 사람이 입을 뗐다.
“음... 그런 기준들이 있는 걸로 알고 있긴 한데, 저도 다 정확히 몰라요.”
너무 사소한 부분에 대한 질문을 한 건가? 공무원이 해야 할 일에 대해 당사자에게 물어본 건가? 이런 의문들이 머리를 스치는 와중에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는 예견치 못한 방향으로 나를 더욱 당황하게 했다.
“규격이나 재질 기준은 대부분 '보이는 사람들' 입장에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사실 그런 세부적인 길이가 저희에게 특별히 의미 있지는 않아요. 저희한테 유도블록은 무조건 노란색이어야 하고, 케인으로 치거나 밟았을 때 느껴지기만 하면 돼요. 크기나 넓이의 차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솔직히 정해진 규정을 다 지키지 않아도 돼요. 규격에 좀 안 맞아도 유도블록이 있기만 해도 감사할 것 같아요.”
나는 ‘보이는 사람들’이라는 말에 나쁜 짓을 하다 들통난 사람처럼 흠칫했다. 은연중에 ‘규격에 맞지 않게 설치된 유도블록이 많아서 불편하다’라는 그의 대답을 기대했다. 그런 대답을 들으면 인도에 보이는 모든 유도블록에 자를 갖다 대려는 나의 계획에 정당성이 생길 것 같았다. 그리고 보고서도 조금 더 수월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대답한 사람의 말로 미루어보아 이 거창한 ‘보이는 사람’의 계획은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다지도 급한 문제가 아니었다. 유도블록이 30cm가 아니라 25cm라는 것을 지적하기에 앞서, 아직도 유도블록이 설치되지 않은 곳이 많음을 지적해야 한다. 또 이미 설치된 유도블록도 그 존재를 맹인이 알 수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므로, 잔여시력으로 잘 볼 수 있는 쨍한 노란색이면서 발이나 케인으로 잘 느낄 수 있도록 요철이 있으면 된다. 그 외 여타 세부적인 규격들이 정해져 있지만, 이 두 가지 조건이 지켜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날 이후로 며칠간은 다니는 모든 길에 노란색의 유도블록이 있는지 없는지 자세히 볼 수밖에 없었다. 한 번도 유심히 살펴본 적이 없었는데 충격적이게도 유도블록이 없는 곳이 너무나 많았다. 심지어는 서울대병원에서 가까운 지하철역 출구에서부터 병원까지 가는 길에도 유도블록이 없었다. 길 한가운데 커다란 마로니에 나무를 심어둘 만큼 넓은 그 길에, 맹인이 안전하게 걸을 권리는 심겨 있지 않았다. 유도블록뿐만이 아니었다. 병원으로 진입하는 사거리 횡단보도에는 신호등이 없었다.***** 시각장애인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건널 수 있을 그 길을 처음으로 인식한 나는 확 열이 뻗쳤다.
서울대병원 앞을 걷다가 “이 길에는 유도블록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주위를 둘러본 다음 “그렇지 않다”라고 쉽게 대답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인식하기 쉬운 사실이라고 한들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스스로 알아낼 수는 없다. 이십몇 년 간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진 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스스로 그런 의문이 피어난 적도 없었던 것이 문제였다. 내가 걷는 길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길일 수 있다는 쉬운 사실을 아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보이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사람에 비해 상상력이 무척이나 제한되어 있다. 세상 모든 것이 보이는 사람에게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보이는 사람은 매일 보는 것과 다른 모양의 인도와 버스정류장과 출입문을 상상할 필요가 없다. 불편함을 매일 지고 살아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어야만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직접 듣지 않고서는, 그 상상력을 조금도 따라갈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A 씨를 만난 것은 나에게 무척이나 행운이었다. 그와 이야기를 하면 나의 양쪽 어깨뼈에도 조그마한 상상의 날개가 돋아나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말이다.
*점자블록: 유도블록이라고도 하며, 종류로는 점형블록과 선형블록이 있다. 접형블록은 각종 단차, 출입구 등의 위치를 표시해주고 위험물을 둘러막아 위험을 사전 경고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선형블록은 보행로의 진행방향, 횡단보도의 횡단방향, 출입구의 진입방향 등을 유도해 주며 보행 시 이동 동선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볼라드: 자동차 진입억제용 말뚝이라고도 하며,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차량이 보행 구역 안으로 진입하는 것을 차단하는 교통 시설물이다.
***김지혜, 오충원, 남이해(2021), 시각장애인의 독립보행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 2021년 대한지리학회 연례학술대회 발표 논문 요약집, p. 149
****정도가 심한 시각장애인: 「장애인복지법 시행규칙 제2조 별표1」에 따라 시각장애인을 정도에 따라 두 분류로 나누었을 때 더 정도가 심한 분류로, (1) 좋은 눈의 시력(공인된 시력표로 측정한 것을 말하며, 굴절이상이 있는 사람은 최대 교정시력을 기준으로 한다. 이하 같다)이 0.06 이하인 사람 (2) 2두 눈의 시야가 각각 모든 방향에서 5도 이하로 남은 사람이 해당된다.
*****다행히도 이 글을 게시하는 2024년 7월, 위험천만했던 그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