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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윤재 Jul 19. 2024

나쁜 도움

네 번째 이야기

  A 씨는 고등학교 3년을 과천과 서울 사이를 통학했다. 서울 소재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부터는 어머니가 세종으로 발령이 나서 주말마다 서울에서 세종으로 내려갔다. 그랬기에 걷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기차를 타는 데에는 도가 텄다. 시각장애인들은 아무 위치에나 정차한 후에 금세 가버리는 버스 타기를 가장 어려워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버스 타는 것에도 요령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동수단 중에서 버스를 선호하는 몇 안 되는 시각장애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훌륭한 뚜벅이가 되기까지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는 걸으면서 힘들었던 점을 이야기하라면 하루도 모자란다고 했다.

  그가 ‘최강 사건’이라고 부르는 일 년 전 일화가 있다. 밤 9시쯤 세종으로 내려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오송역으로 가는 표를 사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오송역 가는 표가 있나요?” 

  그의 질문에 역무원은 현재는 자리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오송으로 반드시 가야 했던 그는 줄 오른쪽으로 나와 기다렸다. 취소표가 생기는 경우가 많아서 줄이 줄어들고 나면 다시 표를 사볼 생각이었다. 

  잠시 뒤 자기 차례가 된 한 중년 남자가 표를 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A 씨와 행선지가 같았다.

  “오송 가는 표 있어요?” 

  기차표가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네 있어요. 바로 다음 시간으로 드릴까요?”

  “네, 두 장 주세요.”

  기다리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오송으로 가는 기차에 여석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는 딱 두 장만 여석이 생긴 것은 아니길 바라며 다시 줄을 서서 표를 살 생각이었다.

  그러나 뒤이어 표 두 장을 든 남자가 그에게 다가오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야. 내가 표 두 장 끊었으니까 너 나랑 같이 가면 돼.”

  남자가 큰 소리로 말했다. 술 냄새가 확 끼쳤다.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면 먼저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 보어야 한다. 이런 기본예절에 대한 무지가 값싼 동정심과 만나서 다짜고짜 감사를 강요하는 행태로 드러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A 씨는 그런 사람을 만나면 자신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보는 것에 화가 났다.

  “이렇게 표를 끊어오셔도 현금이 없어서 돈을 드릴 수가 없어요. 그리고 저는 시각장애인이라서 기차표도 무료고요. 일단 가서 표를 반환하시면 제가 제 자리는 직접 살게요.”

  그는 침착하게 대응했다. 갑자기 자신을 위협한 것은 당황스러웠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가 선의로 자신의 표를 사주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남자는 점점 후안무치한 태도가 되었다.

  “이미 끊었는데 반환을 어떻게 해! 나랑 그냥 같이 가고, 너 때문에 표 두 장 끊었으니까 내가 낸 돈 두 배로 내놔. 너 어차피 이 표 아니면 기차도 못 타잖아.”

  남자는 윽박을 지르며 그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술에 너무 취해 사리분별이 안 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기차표를 못 구해 기다리고 있던 사람을 이용해 돈을 벌어보려는 심사였던 것일까.

  “빨리 창구로 가면 반환하는 것 도와드릴게요. 정말로 저는 이 표가 필요 없어요.”

  그는 반복해서 그를 구슬리는 데 지쳐가고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남자는 이제 아예 표를 주머니에 숨겨 창구로 가져갈 수도 없게 해버렸다.

  “어린놈의 새끼가 도와준다는데 버릇이 없네. 너 일로 와봐.”

  남자는 갑자기 그의 팔을 잡고 역사 한쪽 구석으로 끌고 갔다. 그를 벽으로 밀어붙이며 폭언을 했다.

  “도와주세요! 못 도와주시면 신고라도 해주세요...”

  그는 순식간에 위험에 처했다. 그 위기의 순간 속에서 아직도 그의 기억에 아프게 남은 것은, 주변에 사람들이 지나가는 소리가 났음에도 누구도 상황을 제지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돈 더블로 내놔. 내놓으면 놔줄 테니까.”

  남자의 협박에 그는 그냥 돈을 주고 상황을 모면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갑에 현금이 없었던 데다가, 남자가 지갑이든 핸드폰이든 꺼낼 수 없도록 손을 붙잡고 있었다. 경찰을 부를 수도, 저항할 수도 없었다. 법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여기서 맞고 다치는 한이 있어도 함부로 팔을 휘둘렀다가 남자가 맞으면 자신도 처벌을 받을 것 같았다. 

  몇 시간 같은 몇 분의 실랑이가 끝난 후에야 철도경찰이 달려와 남자를 그로부터 분리했다. 역 사무실에서 경찰이 A 씨와 남자를 각각 조사한 후에 밝혀진 바로는 그 남자는 오송을 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경찰에게 1980년대에는 명절에 기차표를 구하지 못한 귀성객을 대상으로 기차표를 두 배 가격으로 되파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경찰은 그에게 남자의 처벌을 원하냐고 물어보았고, 그는 오송까지 안전하게 가고 싶으니 분리만 잘해 달라고 부탁했다. 부모님과 어렵게 통화를 하고 우여곡절 끝에 오송역에 갈 수 있었다. 그에게는 너무나도 괴로운 밤이었다.

  그는 이 이야기를 죽 하고는 나에게 그래도 자신이 또래 시각장애인들보다 대처능력이 좋은 편이라 잘 마무리된 것 같다고 하면서 싱긋 웃어 보였다. 나는 이 말에 안타까워해야 할지, 함께 싱긋 웃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누구도 처해서는 안 되었을 최악의 일을 덤덤히 회상하며 말하고 있었다.

  A 씨는 언젠가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 없는 경우에는 묻지도 않고 도움을 주면서, 막상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외면한다고 느낀 적이 있었다. 그의 ‘최강 사건’은 이런 아이러니가 극명히 드러나는 사례이다.

  그가 몇 년간 길을 거닐면서 이런 아이러니는 여러 번 재현되었다. 한 번은 지하철역에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는데, 한 행인이 시각장애인이 계단을 걷는 것은 위험하다며 억지로 엘리베이터로 끌고 갔다. 또 한 번은 그가 길을 찾고 있을 때 행인이 도움이 필요한지 묻지도 않고 팔을 잡고 큰 길가로 끌고 갔다. 이들은 독단적으로 도움을 준 후에는 감사할 것을 요구했다. 자신이 없었으면 아무것도 못했을 테니, 마땅히 고마워하라는 어이없는 태도였다. 막상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자리가 비었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서서 가야 하거나, 진짜 필요해서 길을 안내받으려고 물어보면 외면당하는 경우가 많은 황당한 세상이다.

  그렇기에 그가 길을 걸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이었다. 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를 꾸준히 걷게 만든 것은 시각장애인이라고 해서 먼 길을 떠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그의 강한 믿음과, 때때로 그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주었던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도움을 잘 주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영광스럽게도 나는 그에게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을 주는 방법을 직접 배우고 연습할 수 있었다. 실은 아주 어려운 일이 아님에도 시각장애인과 단둘이 걷는 것은 처음이었던 나는 바짝 긴장했다. 협회에서 그를 만나서 지하철역 근처에 있는 카페로 가는 것까지가 첫 동행의 내용이었다. 나는 그가 여러 번 다녀보았을 길이니 내 도움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닐까, 괜히 도움을 주려고 했다가 실례가 되는 것은 아닐까 복잡한 고민을 하며 그를 기다렸다.

  고맙게도 그가 먼저 도와달라고 말해주었다. 

  “팔꿈치 주시면 제가 잡고 갈게요.”

  나는 팔꿈치를 내밀었고, A 씨는 내 팔꿈치를 잡았다. 그동안 잘 지냈는지 서로 안부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나는 나의 팔꿈치와 발걸음과 시선이 모두 흔들리고 있음을 최대한 감추려고 노력했다. 첫 몇십 걸음 동안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서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던 것 같다. 

  인도를 걷는 것이 익숙해질 때쯤에는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는 실시간으로 도착 버스 정보를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핸드폰을 귀에 가까이 대고는, 나에게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퇴근 시간이라 제대로 서 있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꽉 찬 버스를 타고 나서 나는 한 번 더 우왕좌왕했다.

  “안으로 들어가셔야 할 것 같아요.”라고 뒤이어 탄 여자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을 때,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그의 등을 조심스럽게 앞으로 밀었다. 틀리게 도와주는 것 같았다. 물론 짜증스러운 말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얼굴이나 보려고 뒤를 돌아보기도 했다. A 씨가 지팡이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는지 약간 당황한 것 같은 여자의 표정을 보았다. 

  이 일련의 사건 후, 두 번째 A 씨를 만났을 때까지도 무언가 잘못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때의 일에 대해 그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제가 길이나 버스에서 뭐 실수한 건 없었나요? 시각장애인과 함께 걸어본 게 처음이라서 뭔가 잘못한 것 같아요.”

  그러자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글쎄요. 저는 잘 생각 안 나는데요? 그렇게 티 나는 실수는 없었어요.”

  나는 마음이 확 놓였다.

  “기억은 안 나지만 무언가 잘못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설령 그랬더라도 제가 기억하지 않는 건 윤재 씨가 어떻게든 도와주려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일 거예요. 뭔가 잘못하고 있었더라도 제가 그런 사람에게는 편하게 말했을 거예요. 중요한 건 개선하려는 마음이 있는지 같아요. 이야기해 줘도 안 듣는 사람도 많거든요.”

  그에 따르면 허락 없이 도움을 주더라도 기분이 비교적 괜찮은 경우가 있고 나쁜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은 도움을 주기 전 물어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그저 모를 뿐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런 사람은 뭔가를 잘못하지는 않을지 안절부절못해하는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또 그런 사람은 다음부터는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봐달라고 이야기하면, 아차 하면서 앞으로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장애인이니까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장애인이 혼자 나와서 어쩌려고 그래.” “보호자도 없이 혼자 걷다가 다쳐.”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그는 몇 년 간의 부단한 노력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는 이렇게 외치고 싶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잘 모르겠으면 그냥 물어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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